“문화재에는 휴전선이 없습니다. 고구려, 고려는 휴전선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끊어져 있었어도 문화재에는 핏줄이 연결돼 있습니다. 남북 교류가 문화재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손잡고 나아갈 것입니다.”
정재숙(57·사진) 신임 문화재청장이 11일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인근 음식점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정 청장은 “2015년 이후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와 유적 보존사업을 다음 달 2일 착수식과 함께 오는 12월27일까지 시행해 남북한 공동문화유산인 만월대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지지·복원사업에 우선 주력할 것”이라며 “비무장지대 내 (후삼국시대 궁예의 도성이던) 태봉국 철원성 복원을 통해 남북한뿐 아니라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을 되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청장은 “평양 고구려 고분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를 실시할 것이고 내년 100주년을 맞는 3·1운동 남북공동 유적조사와 학술회의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남북한 문화재 분야 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계획을 펼쳐 보였다. 앞서 지난 6일 문화재청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통일부 등과 함께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실무협의를 개최했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해 상당 부분 합의를 이끌어 냈다. 우선 가시적인 성과는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남북한이 공동등재하는 것에서 나올 전망이다. 정 청장은 “오는 11월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씨름’의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때 남북한이 공동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긍정적 답변을 들었다”면서 “유네스코 측에서도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신청을 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회신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과의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엔(UN)의 대북 경제제재를 위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정 청장은 “북한 측에는 투입 인력에 대한 식비 외에는 일절 현금지급이 없고 장비는 갖고 갔다가 사용 후 그대로 반출할 예정이며 오동나무 상자와 중성지 등 발굴에 필요한 물자도 통일부, 외교부와의 협의 아래 반입하는 것”이라면서 “식비는 먹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니 불가피하고 일련의 물자지원은 지난 (2007년 이후) 2015년까지 유지돼 온 방식이 그래도 적용되는 것이며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써야 한다는 점은 명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문화재청은 내년도 예산·기금안을 올해보다 8.4% 증가한 8,693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문화재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인 0.18%이며 OECD 평균치인 0.26%에는 못 미친다. 특히 내년에는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月臺) 복원과 역사광장 조성, 해태상 원위치 이전 등에 133억원이 투입된다. 현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에는 약 400억원, 문재인 대통령이 개선을 지시한 문화재 안내판 사업에는 59억원이 각각 배정된다. 이 중 가야사 복원사업에 대해 정 청장은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청에서 관리할 수 있는 속도로 시민 피해를 최소화하며 과정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서울경제신문, 한겨레 등을 거쳐 중앙일보에 재직한 문화전문기자 출신이다. 그는 “문화재 전문가의 혜안을 빌리되 기자정신으로 현장을 뒤지고 현장 목소리를 들어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며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인류의 얼인 만큼 ‘안전’이 최우선이고 ‘보존’이 생명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해 과거의 유산이 미래의 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또한 정 청장은 “문화재청은 1946년 황실사무처에서 시작돼 문화재관리국이 1999년 문화재청으로 독립하면서 제대로 첫걸음을 내딛었다”면서 “내년 5월이 설립 20주년으로 문화재청이 ‘성년’을 맞았으니 그간의 선입견과 부정적 인식을 거두고 밝고 명랑하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나가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