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테리어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업체 인스테리어의 황인철(47) 대표는 13년 동안 한샘에서 재무·기획·투자 업무를 맡으며 인테리어 시장의 잠재력을 확신했다. 정보 비대칭이 심한 인테리어 시장에서 소비자가 ‘을’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이를 해결하고 싶었던 황 대표는 직접 회사를 차렸고 ‘시장 진입’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보관이사 업체와 손을 잡았다. 황 대표는 “인테리어 고객들이 보관이사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한샘에 근무할 때 안면을 텄던 업체와 손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황 대표는 경영 측면에서 중장년이 지닌 강점을 두루 활용한 전형적 사례다. 자신이 오랜 기간 경험을 다졌던 분야에서 창업 기회를 포착하고 전문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사업을 현실화한 것이다. 이는 사회에 갓 나온 20대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이다. 창업 생태계에서 중장년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자신의 경영 노하우나 회사 인력관리, 네트워킹 관련 조언 등을 전수하는 중장년 기업가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문효은(51) 아트벤처스 대표는 40세를 넘어 눈뜨게 된 ‘미술’을 통해 창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2004년부터 10년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한 문 대표는 다음 재직 당시 우연히 사내복지를 위해 신진작가 전시를 개최하게 됐다. 미술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문 대표는 전시를 계기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출장길에서 들른 홍콩아트페어에 방문하면서 사업성을 확신, 창업에 나섰다. 문 대표는 “예술이라는 분야에 관심도, 경험도 없었지만 우연히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아트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며 “인터넷 벤처 1세대로서 정보기술(IT)과 예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장르에서 인생의 2막을 열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부터 매년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토이 박람회인 ‘아트토이컬쳐’를 개최하며 아트토이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유 오피스를 활용해 미술 강좌를 진행하는 ‘플레이아트(Playart)’를 론칭한 데 이어 올해는 프리미엄 큐레이션 숍 ‘라부(Ravoux)’도 선보였다. 문 대표는 “소확행이나 욜로(YOLO) 등이 중요한 이슈이자 소비의 키워드로 부상한 만큼 지금은 취미가 생업이 되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며 “20대부터 40대까지 자신의 생업에 집중했다면 50대에는 자신의 취미와 일을 접목시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장년이 창업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어 성공한 케이스를 해외에서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창업자도 55세에 온라인 매체를 만들었다.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며 오랜 경력을 쌓은 덕분이다. 그는 허핑턴포스트가 성공한 후 66세에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스라이브글로벌을 설립하는 열정을 보이며 사업을 확장했다. 컴퓨터와 전기공학·음반산업 등에서 경험을 쌓았던 조지프 루빈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 겸 컨센시스 창업자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비트코인을 접하면서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이더리움을 만들고 컨센시스를 설립했던 2014년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노하우를 적재적소에 반영해 성공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가운데 경험이 적은 청년들이 창업해 대성공을 거두는 케이스는 오히려 극히 일부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벤저민 존스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이 미국 인구 정보와 세금신고 현황 등을 결합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최소 한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270만명의 회사 창립자 목록을 작성했는데 이들이 기업을 설립할 당시 평균 나이는 41.9세였다. 이 가운데 기술 관련 업체만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그 중 상위 0.1%의 고속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만 골라내면 창업자들의 평균 나이는 45.0세였다. 50대 창업자가 30대 창업자에 비해 성공할 확률도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공개(IPO)나 매각을 통해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 창업자의 나이도 평균 46.7세였다.
창업 생태계에서 중장년의 역할은 더욱 확장된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자신의 경영 노하우나 회사 인력관리, 네트워킹 관련 조언 등을 전수하는 중장년 창업가나 멘토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술·경험·네트워크를 보유한 중장년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청년 창업가를 연결해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세대융합 창업’이 주목받는 이유도 앞선 경험이 주는 이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세대융합 창업 캠퍼스’ 지원자 경쟁률이 지난해 4.9대1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6.3대1까지 뛰었다. 청년 스타트업 멘토로 참여하는 시니어도 늘고 있다. 산업은행에서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노현명(61·가명)씨는 국내 비즈니스센터 업체인 르호봇의 ‘장년인재 서포터즈’ 사업을 통해 국내의 한 청년 창업가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노씨는 “젊은 창업가와 소통하면서도 저 스스로 그 청년의 사업화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로 나오면 창업자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며 “비즈니스 경험이 풍부한 40~50대는 돌발상황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이 젊은 층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스타트업이 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인사 문제로 힘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관리자 경험이 있으면 직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는 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청년 창업가들과 달리 중장년에게는 ‘성실 실패’가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인스테리어의 황 대표는 “청년 창업자는 중년에 비해 칠전팔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편이지만 중년 창업자의 경우 사업에 실패하면 그간 쌓아온 인맥과 경험이 송두리째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성실 실패자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적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수민·심우일·이현호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