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명수-일선판사 '檢수사협조' 잇딴 엇박자… 추락하는 사법 신뢰

金대법원장 개혁안 내놓자 유해용 전 연구원 구속 기각

'재판거래로 업무 가중'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증설 또 요구

엇박자 이어지자 법조계·시민단체 비판여론 거세져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검찰 수사 적극 협조를 다짐하고 있다. /사진제공=대법원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검찰 수사 적극 협조를 다짐하고 있다. /사진제공=대법원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협조 의지를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선언과 일선 법원의 태도가 끊임없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말을 연방 되풀이하는 김 대법원장과 달리 일선 법원에서는 검찰 수사에 필요한 영장을 이례적일 정도로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와 시민사회가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에 의문 부호를 표하는 등 현 사법부에 대한 신뢰 역시 점점 추락하는 분위기다.

◇사법개혁 발표날 유해용 구속 기각=상당수 법조인은 지난 20일 대법원 재판 관련 기밀문건을 외부로 반출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 “또 다시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았다. 해당 영장은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뒤 처음으로 제기된 구속영장이었다.


특히 심리를 맡은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에 없는 장문의 기각 사유를 공개하며 노골적으로 검찰과 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 동안 수 차례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이어진 검찰의 반발을 잠재우기라도 하려는 듯 각 혐의마다 조목조목 기각 사유를 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관계자는 “법원이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A4 용지 2매에 달하는 분량으로 작성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범죄 성립 여부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것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동안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온 기준에 비춰 보면 이번 영장 기각은 전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서울중앙지법은 나아가 이날 영장전담 재판부를 5곳으로 증설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 지난 3일 영장전담 재판부를 3곳에서 4곳으로 늘린 지 고작 17일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재판부 증설의 이유로 든 것은 다름 아닌 ‘재판거래 관련 영장청구로 인한 업무 부담 과중’이었다. 법원이 영장전담 재판부를 4곳으로 늘리면서 검찰 출신 경력법관인 명재권 부장판사를 앉힐 때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거래 수사를 의식한 인사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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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날은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 대(對)국민 담화문’ 발표한 날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행저처 폐지, 법원사무처·대법원 사무국 분리, 사법행정회의에 사법 행정권 이양, 법원사무처 내 상근법관직 폐지 등 각종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정의롭고 독립된 법원’을 포기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바라본 대다수 법조인들이 유독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다.

◇엇박자 연속에 비판여론 고조=검찰수사 협조를 둘러싼 김 대법원장의 약속과 일선 법관들의 판단이 충돌한 것은 비단 이날뿐이 아니다. 김 대법원장은 이미 지난 6월15일 두번째 대국민 담화를 통해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과 원칙에 따르는 수사는 사법부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해 주요 연루자들의 PC 하드디스크 임의제출 요구를 처음부터 거절했다. 심지어 하드디스크를 복구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며 수사기관의 힘을 빼기도 했다. 법원이 검찰에 처음 제출한 자료도 전체의 극히 일부인 410개 파일에 그쳤다. 검찰의 강제수사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압수수색 영장의 90%를 기각했다. 유 전 연구관의 경우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사이 증거물이 될 문서들을 파기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석달 동안 침묵만 지키던 김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다시 한번 수사 협조 의지를 표명했다.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경고한 터였다. 김 대법원장은 “최근 현안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대법원장의 공언(公言)은 그야말로 공언(空言)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김 대법원장과 일선 법관들의 언행불일치 행태가 계속되면서 현 사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이 법원개혁안으로 적당히 사법농단을 무마할 수 있다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라며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김 대법원장의 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협의회도 최근 성명을 내고 “새 대법원 체제에서도 수사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영장기각이나 증거인멸 의혹이 증폭되고 있어 국민의 커다란 공분을 사고 있다”며 “김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법관들은 사태의 진상과 책임소재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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