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남북미 간 빠른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대체로 됐다”고 밝히면서 연내 종전선언 협상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상응 조치 내용과 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후속협상 과정에서 신경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6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과감한 조치’를 주문하며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러나 “비핵화까지는 경제제재를 유지하겠다”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언급했다.
◇文, 유엔 연설 “국제사회가 화답할 차례”=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은 오랜 고립에서 스스로 벗어나 다시 세계 앞에 섰다”며 “국제사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확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길을 열어준다면 북한이 평화와 번영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확신한다”면서 “한국은 북한을 그 길로 이끌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보수층의 지배적 정서인 북한 비핵화 회의론을 의식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채널과의 인터뷰에서도 “주한미군은 전적으로 한미동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며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북이 통일을 이루고 난 후에도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평화협정·통일까지 이뤄져도 주한미군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 국내 보수층 설득에 나선 셈이다.
대북 제재를 당장 완화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상응 조치가 가능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이 영변 핵기지를 폐기하면 미국의 장기간 참관이 필요할 텐데 참관을 위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그러면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미국의 의지도 보여주며 참관단들이 머물고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비핵화 조치가 완료되고 나면 경제시찰단을 서로 교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현재 비핵화 협상에서 한미가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이 취해야 하는 조치는 핵, 미사일, 영변 핵기지,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인데 이는 불가역적 조치”라며 “그러나 한미 양국의 군사훈련 중단은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고 종전선언도 정치적 선언이라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재를 완화해도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외교협회(CFR) 등이 주최한 행사 질의응답에서는 “김 위원장이 ‘북한이 이 상황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서 도대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렇게 되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을 할 텐데 그 보복을 북한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연설 180도 달라졌지만=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자세로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문 대통령의 ‘과감한 조치’보다는 다소 신중한 기류를 유지했다. 북미정상회담 역시 당장 다음달 안에 성사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 망령을 새로운 평화 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칭했던 1년 전과는 온도 차가 큰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그의 용기와 그가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시행될 것이라며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을 재확인했다.
결국 앞으로 전 세계의 관심은 북미정상회담이 언제, 어디서 열리고 어떤 합의를 이룰지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이 조만간 열리기를 희망한다”면서 “오는 10월에 열릴 수도 있겠지만 그 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국 중간선거(11월6일) 전에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이라는 일반적 전망과는 배치되는 발언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대하는 백악관의 신중한 태도가 엿보인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직 언급이 이르지만 회담 장소로는 워싱턴DC,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판문점 등이 거론된다. 북미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날 경우 김 위원장이 12월께 서울을 답방하고 이 자리에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뉴욕=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