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해외여행 떠나는 길.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요. 출국심사를 모두 마치고 나와 창밖 비행기가 보이는 인천공항 출국 터미널에서 즐기는 쇼핑만큼이나 기분을 들뜨게하는 경험이 있을까요. 하지만 쇼핑한 물건을 해외여행 내내 캐리어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 역시 한 번 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을 샀다가 여행 중 깨지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가뜩이나 무거운 여행 가방에 출국 전 산 면세품을 넣어 다니다 보면 후회가 들 정도입니다.
정부가 이런 국민적 불편을 덜고자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겠다고 지난 27일 발표했습니다. 올해 말까지 관세법 등 관련 법률 개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사업자 선정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5월말 인천공항에 입국장 면세점을 오픈 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입국 때 짐을 찾는 컨베이어 밸트 바로 옆에 면세점이 들어서게 됩니다. 입국장 면세점이 이미 전 세계 88개국 333개 공항 중 73개국 149개 공항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환영할 일이지요. 인천공항과 경쟁하고 있는 홍콩 첵랍콕, 싱가포르 창이, 일본 나리타, 중국 베이징 등의 공항들도 모두 입국장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입국장 면세점 추진 계획이 반쪽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왜일까요?
정부는 입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롯데·신라·신세계 등 면세업계 ‘빅3’에는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중소·중견 면세업체들에만 운영권 선정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기업들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지요. 글로벌 면세업계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을 자신들 면세 매장에 입점 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어느 브랜드를 유치했느냐를 두고 면세 사업자의 경영 능력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고요.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들을 유치할 능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제외하고서, 상대적으로 이런 역량이 떨어지는 중소·중견 면세업체에만 세계 1위 공항의 입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주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찰을 구분해 직접 경쟁을 벌이지 않게 하고, 이들 모두에 운영권을 준다면 소비자 선택권이 보다 넓어지지 않겠냐는 아쉬움입니다. ‘입국장 면세점이 중기 적합업종이 된 것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기존 시내 면세점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운영권 티켓이 구분돼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직접 입찰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대기업은 대기업 나름대로 강점을 가지고 있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나름의 성장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겁니다.
면세품 한도를 여전히 1인당 미화 600달러로 한정한 것을 두고도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 1,800달러 중국 1,165달러인 점들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600달러는 너무 많이 낮은 감이 있습니다. 중소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입국장 면세점에서 다양한 국산 제품을 판매해 면세점은 물론 국내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면세 한도를 그대로 유지한 것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을 나타났습니다.
업계를 중심으로 600달러 한도를 높여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내국인의 국내 면세점 구매액은 지난 2010년 18억8,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8억6,000만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출국자 수가 같은 기간 1,249만명에서 약 2,650만명으로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1인당 평균으로 따져도 구매액이 약 40% 가량 늘었습니다. 국민 1인당 면세품 구매액은 높아졌는데, 한도를 그대로 두는 셈입니다.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위법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최고 상한이 아니라 일반 평균치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누구나 잠재적인 범법자가 되는 것 같다”고 일갈했습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