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과보호 덫'에 갇힌 농업, 이대로 괜찮은가] 기업農만 1만4,000곳...日 농지 임대로 영농 대규모화

농업에 개혁 칼 댄 아베

농업법인 규제 완화·특구 설치로 기업 참여 유도

시장 왜곡하는 직불금 감축...퍼주기식 지원 지양

농가-중기 연대해 스마트 농법 도입 땐 자금 지원




# 지난 2012년 동부한농은 자회사를 통해 태양광을 활용한 토마토 식물공장을 시작했다. 무토양 양액재배 시스템이라는 신농법으로 작물에 양분을 공급하고 첨단 제어 시스템으로 온도·빛·습도·CO2 등 생육조건을 조절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재배뿐 아니라 수확과 선별·포장 등 대부분의 공정을 무인화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 당시 동부한농은 100여명의 인원으로 15㏊(15만㎡)에 달하는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려 했다. 스마트농업을 선제 도입하려 한 것이다.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생산된 토마토는 전량 수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과 대기업의 농업 참여에 따른 경쟁력 상실을 우려한 농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동부한농은 농민들의 항의에 못 이겨 식물공장을 폐쇄했다.


# 2016년 LG CNS는 새만금에 76.2㏊의 농지를 확보해 ‘스마트바이오파크’를 조성하고 해외전문 재배사를 통해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LG CNS는 “스마트팜 설비와 솔루션, 과학영농기술 개발 등에 집중하고 농민들이 원할 경우 재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농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사업을 접었다.

동부한농과 LG CNS는 우리나라 농업개혁 좌초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후 대기업의 농업 진출 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과 사업 지원, 세금 감면 등에 안주한 농업인들이 영농의 대규모화와 스마트화를 가로막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농민단체들이 지난 2016년 7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대기업-LG 농업 진출 저지를 위한 농업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농민단체들이 지난 2016년 7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대기업-LG 농업 진출 저지를 위한 농업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농토가 비좁아 태생적으로 농업 경쟁력이 열악한 우리와 유사한 처지인 일본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고 기업의 농업 참여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농업개혁에 나서고 있다.


아베 내각은 2013년 6월 농정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아베의 농업개혁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쌀 중심의 농업에서 탈피하고 시장을 왜곡하는 농업보조금을 줄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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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아베 정부는 쌀 직불금(고정직불 및 변동직불)을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대신 쌀 농가의 소득 감소를 일부 완화해주기 위해 쌀과 밭작물의 수입 합계가 평년 수입보다 낮은 경우 그 차액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수입감소영향 완화 지불’을 확대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주식인 쌀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직불이나 소득보전직불은 유지하면서도 쌀 생산 과잉을 촉발하고 가격기능을 훼손시키는 변동직불은 없애는 대신 손해보험을 확대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변동직불은 쌀의 목표가격보다 시장가격이 낮으면 차액의 일정액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쌀 생산 과잉과 쌀 가격 왜곡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 하나는 농업의 대규모화다. 아베 내각은 ‘농업의 성장산업화’를 모토로 내걸고 농업생산법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농업특구를 도입했다. 대기업의 농지 소유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소유 자체는 금지하면서도 농지중간관리기구나 농지은행을 통한 농지 임대차를 대거 허용해 기업의 농업 참여를 활성화했고 그 결과 일본의 농업생산법인 수는 2014년 기준 1만4,000곳을 넘어섰다. 특히 이 가운데 25%가량인 3,670여개 법인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식회사 형태다. 하지만 농업생산법인이 농민의 입지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농업생산법인 임원의 절반 이상을 농업 상시 종사자로 하고 농업 관계자가 아닌 사람은 의결권의 절반 이상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농민의 기업 참여를 유도했다. 대규모 영농으로 인한 수익이 일정 부분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상생’ 방안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기업의 참여가 농업의 스마트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농가와 중소기업이 연대해 스마트농법을 도입할 경우 낮은 금리에 정책자금을 융자해주거나 농업생산법인에 정부가 지분을 출자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일본 농정개혁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기업의 농업 진출은 고용 창출 효과, 농지이용률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농지 임대 활성화 등을 통해 기업의 농업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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