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의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쇄신)’을 이끌며 ‘베트남의 덩샤오핑’으로 불린 도므어이 베트남 전 공산당 서기장이 별세했다. 베트남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자 가난에 허덕이던 베트남 경제를 오늘날과 같은 번영으로 이끌었던 그는 1일 오후11시12분 수도 하노이시 108군 병원에서 향년 101세로 숨을 거뒀다고 베트남뉴스통신(VNA)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지난 1917년 하노이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응우옌주이꽁이다. 1936년 19세의 나이로 베트남 공산당의 전신인 프랑스 인민전선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펼치는 등 혁명전사로 맹활약하면서 ‘열 번 승리했다’는 뜻을 지난 ‘도므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므어이는 베트남이 통일한 직후인 1976년 부총리에 올라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베트남 권력서열 1위인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베트남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핵심 인물로 꼽힌다. 1975년 통일 후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구축한 베트남 경제는 극심한 가난에 허덕였다. 1985년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39달러(약 26만7,500원)에 그칠 정도였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베트남 공산당 최고위층에서 나왔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 ‘변경한다’는 뜻의 도이(doi)와 ‘새롭게’라는 의미의 머이(moi)를 합친 ‘도이머이’ 정책을 도입,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개방에 불을 댕긴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므어이 전 서기장이다.
그의 서기장 재임 기간 중 베트남은 외교적인 고립에서도 벗어났다. 1991년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1992년), 미국(1995년)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외자 유치에 속도를 냈다. 도이머이 정책 도입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의 경제 규모는 10배 가까이 뛰었다. 이 같은 베트남식 고성장 해법은 현재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로도 언급되고 있다. 올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베트남의 기적이 당신(김 위원장)의 것이 될 수 있다”며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베트남처럼 경제 번영을 이루라고 말하기도 했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1995년 한국을 공식 방문하고 1996년 베트남을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우리나라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경제정책 수립과정에서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녹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진이 베트남의 요청을 받고 현지를 방문, 척추질환을 앓던 므어이 전 서기장을 치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