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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미스터 션샤인⑤' 김은숙은 최고다, 정말 최고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 했다. ‘역대급’ 또는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저마다 종영 이후 성공요인을 분석해 내놨으나, 이를 타고 올라가보면 그 시작은 늘 극본에 있었다.

작가 김은숙은 두말할 것 없이 로맨스물의 1인자다. 장르도 설정도 달랐지만 삼각관계를 기반으로 오글거리는 대사를 쏙쏙 박아넣어 여심을 뒤흔들었다. 멋지고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재벌 박신양이 “애기야 가자” 하면 모든 (여성!)시청자들이 애기가 됐다. 멜로도 로맨틱 코미디도 아닌 김은숙표 로맨스에 대중은 늘 열광해왔다.


보통은 여기서 멈춘다. 일반적인 작가는 정점에 다다르면 자기복제하면서 고만고만한 작품을 쏟아낸다. 특히 장르물과 막장스토리에 특화된 작가들이 그렇다. 방송사가 마땅한 작품이 없어도 편성은 해야되니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할 때 이들 작품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김은숙 작가는 정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가장 잘하는 것과 새로운 것, 이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매 작품 이어졌다. 그가 생각한 ‘판타지’는 재벌에서 군대로, 신화로, 그리고 역사로 이어졌다.

사실 그의 전작들에서 메시지를 찾기란 어려웠다. 정치 이야기를 담은 ‘시티홀’ 정도가 기억에 남을까. 나머지 작품들은 새로운 로맨스, 사랑 이야기에 치우쳤다. ‘태양의 후예’를 보며 군인에 대한 감사함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도깨비’를 보며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던가. 수려한 영상에 담긴 사랑, 주인공의 운명. 재미있는 드라마 이상의 가치를 논하기 힘들었다.

‘미스터 션샤인’ 만큼은 달랐다. 작품에 무슨 메시지를 담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람 이야기,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이 1년에 몇편이나 되던가. 이런 작품은 보통 시청률에서 뒤지게 되면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 안타까워하다 ‘라이브’, ‘나의 아저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기다가. 작가의 커리어를 뒤흔들 만큼 위험이 큰 선택이었다.

그가 ‘의병’이라는 소재를 꺼내들었을 때 머리에는 ‘웽?’ 하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의병이 사랑하는 이야기라….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미국인, 일본인, 조선 최고의 부자집 도련님까지 능력있는 남자들에 둘러싸인 애기씨. 그녀가 총을 든 것은 ‘강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함으로 봤다. ‘삼각관계를 넘어 사각관계까지 가는구나’ 라는 생각은 기획의도와 인물소개를 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등장한 역사왜곡 논란도 문제 소지는 있지만 작품의 큰 틀에서는 별 영향이 없었다. 기자들이 불을 붙이자 양은냄비가 달아오르듯 인터넷 여론이 달아오르며 과하게 끓어오른 면이 없잖아 있었다. 어차피 사랑이야기인데 라며 ‘설정만 약간 고치면 된다’고 여겼다.

“조금만 더 지켜보면 그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제작진의 말은 맞았다. 갈수록 ‘미스터 션샤인’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단순한 로맨스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역사와 대의,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물전사가 또렷해지며 주인공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끝은 고애신(김태리)의 안전으로 귀결됐다. 왜 그녀를 위해 모두 목숨을 내놓는가. 그 결론은 애신이 결국 조국, 조선이구나 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고고한 자태로 모든 사람들이 존중하는 애기씨. 정작 밤이 되면 총을 들고 지붕을 넘나들며 민족의 배신자들을 저격하는 용감한 여인. 고애신은 수천년 이어온 우리나라를 꼭 닮았다.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여 지켜온 나라. 이 나라의 자유. 그리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까지 그녀의 삶이 곧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선인들은 두 가지 선택을 했다. 이완익(김의성)처럼 나라를 팔고 부를 얻든가, 먼 훗날의 자유를 위해 의병이란 이름으로 죽든가. 이 두 부류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들은 자신의 삶을 오직 애신을 구하는데 바쳤다. 러브. 그 흔해빠진 말에.

‘오얏꽃 흩날리는 봄날의 햇살’처럼 영광은 잠시 뿐이었다. 쿠도 히나(김민정), 김희성(변요한), 구동매(유연석), 유진 초이(이병헌)은 물론 함안댁(이정은)과 행랑아범(신정근)까지 모두 자신을 희생했다. 이들의 선택은 그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살려냈다. ‘나라를 위해 한목숨 던지면 수많은 동포들이 자유를 얻는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의사(義士)들이 말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난 후 주인공들의 사랑을 논하는 이들이 적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사 댓글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의병을 택할 수 있었을까’를 묻는다. 전제조건도 붙는다.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빌어먹는 줄 알면서’라는.

많은 이들이 어려웠을 거라고 답하는 가운데에서도 간간히 ‘나는 하겠다’는 의견이 보인다. “그 시절에 막상 닥치면 했을거다. 독립운동도, 4.19와 5.18 민주화운동도, 촛불집회까지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는 한 네티즌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덧였다.

로맨스의 대가는 이렇듯 작품을 ‘사랑’으로 보기 시작한 시청자들의 ‘애국심’을 끌어올리는 드라마 사상 전무후무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의병사진을 통해 완벽하게 주입시키기까지, 정말 대단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가 끝나고 집 앞 공원에 걸터앉아 작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 9년 전 군에 몸담았던 시절이 불현 듯 떠올랐다. 동해안 최전방 해안소초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선배들께 혼나지 않아 정신이 멀쩡한 날이면 늦은밤 순찰을 돌며 한가지 기도를 되풀이하곤 했다.

‘부디 적이 온다면 내 눈에 먼저 보이고, 그들에게 발각된다면 내가 먼저 보이길. 희생이 필요하다면 이 아이들 대신 내가 되길’ 무서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하늘에 빌던 내 모습이 순간 스쳤다. 전역 후 한번도 떠올리지 않은 기억이자, 겁쟁이라고 할까봐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했던 고백이다.

당시 국가와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같은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함께 먹고자는 이들의 안전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간절했던 마음이 가족과 국가, 민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로 연결됐으리라. 자신의 작품을 분석해야 하는 사람의 의식 흐름을 이렇게까지 끌어내는 그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김은숙은 최고다. 정말이다.

/최상진 기자 sestar@sedaily.com

김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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