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에서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표를 접하노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이들이 많다. 거의 매일같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나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통계수치가 쏟아지고 있으니 그럴 법하다. 엊그제 나온 8월 산업동향만 해도 설비투자가 1.4% 줄어들면서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장기간 줄어들고 있다니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금융위기의 소방수인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불확실성의 증가로 신흥국에서 최대 1,000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놓았다. 사실 정부만 애써 부인하고 있을 뿐 주위를 둘러보면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 전 필리핀에 다녀왔다는 친구를 만났더니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해외로 공장을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30년째 자동차 전장부품을 만들어왔지만 납품물량마저 줄어들어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평소 50여명의 직원들을 먹여 살린다며 으스대던 그의 얼굴에는 등 떠밀려 나가는 타향살이에 대한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다른 나라 증시는 사상 최고치 행진을 거듭하는데 우리만 영 지지부진하고 부동산시장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동요하는 분위기다. 가계 금융자산이 쪼그라들면서 서민들의 주머니가 한층 얇아졌다는 소식 역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경기지표가 바닥권을 헤매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당국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위기설에도 ‘우리는 괜찮다’는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왔던 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각국의 금융위기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증후군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시장은 끊임없이 위기 신호를 보내지만 이를 간파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흔히 풍부한 외환 보유액이 방파제로 거론되고는 한다. 하지만 과거 외환위기에도 그랬거니와 얼마 전 중국에서도 수백억달러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빛의 속도로 자금이 이동하는 세상이다. 당국자들은 올해만 참으면 내년부터 일자리도 늘어나고 형편도 좋아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잘 나갈 때도 어려운 형편인데 행여 글로벌 위기라도 닥치면 우리가 겪을 고초는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용어에 ‘그리드 록(Grid Rock)’이라는 말이 있다. 교차로의 교통 혼잡처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제적 정체상태를 일컫는다.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새로운 것도 창조되지 않아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라는 이념의 덫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작금의 우리 경제를 대변하는 말일 듯하다. “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두자. 프랑스에 필요한 일은 옛것을 지키는 것보다 신산업을 촉진하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얘기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신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라는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비록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고용시장을 개혁하는 등 시장의 불확실성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경제정책이 올곧은 신념인지 아니면 독선으로 흐르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방향이 맞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실행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엉뚱하게 흐를 수 있다. 나만 옳고 진정한 개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개혁 독선’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정치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흐름과 거꾸로 간다면 정치와 경제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