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여명] 초대형IB 두발 떼기가 두렵다

홍준석 증권부장

작년 11월 간신히 첫발 뗐지만

정치권·고위관료 편협한 인식

'反기업정서'에 자본시장 답보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허물어

美中 등과 글로벌 경쟁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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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들어 진전된 남북관계를 보면 세월의 변화를 뼈저리게 느낀다. 남북 정상이 수시로 만나고 평양에서 함께 카퍼레이드까지 하다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해외는 또 어떤가. 세계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하에서 자행하고 있는 세계질서 파괴와 비민주적 행태를 보노라면 세상은 결국 변할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000년대 초반 기자 시절에 출입했던 증권시장을 데스크가 돼 10여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여의도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를 비켜가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당시 300조원대의 시가총액은 2,000조원 시장으로 커버렸고 상장기업 수도 700여개에서 2,200여개로 불어났다. 2001년 9·11테러 이후 3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3,000을 바라보게 됐다. 주식시장의 주요 지표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환골탈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고 우리 증권시장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도 있다. 바로 자본시장에 대한 권력자들의 편협된 인식과 돌부처처럼 꿈쩍 않는 규제다. 이것들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세태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내 갈 길만 가겠다는 양 증권시장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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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이 낳은 폐해로는 지지부진한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생생한데 외환위기 이후 2000년 들어 국내에서도 글로벌 수준의 초대형 IB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수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7년 8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역시 구호만 외치다 끝났다. 이후 2011년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11월에서야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초대형 IB 다섯 곳이 지정됐다. 십수년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첫발을 뗀 것이다. 대형 증권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을 종종 보는데 볼 때마다 회사가 아닌 시장 전체 활성화를 위해 건의하지만 전문성이 없다거나 무관심한 반응이 대부분”이라며 “심지어 자본시장·주식시장은 대기업을 위한 것, 가진 자의 놀이터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전했다. 관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대 증권사의 한 임원은 “공무원들은 오랜 세월 은행을 중심으로 손쉽게 금융을 통제해왔는데 리스크가 크고 가보지 않은 길을 굳이 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씁쓰레했다.

자본시장을 첩첩이 옭아매고 있는 규제는 더 문제다. 초대형 IB의 경우 금융당국이 정한 자기자본 4조원 확충을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KB증권도 충족했지만 또 다른 규제장벽 앞에 약속했던 발행어음 인가가 하릴없이 미뤄지고 있다. 또 은행은 인가 단위가 하나여서 여러 업무를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데 반해 증권사는 인가 단위가 수십개여서 새로운 업무를 할 때마다 새로 인가를 받아야 하는 점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다 보니 증권사들은 본연의 업무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고 돈이 되는 부동산 투자에만 열을 올리는 형국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국내외 부동산시장의 호황으로 증권사가 짭짤한 재미를 봤지만 만약 부동산이 냉각되면 증권사에도 위기가 닥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이 규제에 가로막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 못하고 업종 간 경쟁이 막혀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요새 한국 금융·자본시장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현행 포지티브(원칙적 금지) 규제를 네거티브(원칙적 허용)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대표 IB인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 100조원, 순이익은 35조원가량이다. 금융 후발국인 중국도 증권사들의 자본금이 20조원에 달한다. 팔·다리 다 묶어놓고 말로만 ‘한국판 골드만삭스’는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을 향한 두 발 떼기에 또 십수년이 걸릴까 걱정이다.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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