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필리핀 철권통치’ 두테르테, 건강이상설 심화...정치 불안으로 번지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마닐라 =AP연합뉴스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마닐라 =AP연합뉴스



“만약 암이라고 판정되면 더 이상의 치료는 없다. 나는 집무실이든 어디가 됐든지 간에 고통을 길게 끌지 않을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자신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소문이 무성해지자 스스로 이같이 말하며 “암에 걸릴 경우 사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3주 사이에 2차례나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확산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건강이상설은 지난 3일 월례 국무회의 등 공식 행사를 갑자기 연기하면서 흘러나왔다. 대통령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는 소문이 정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이에 대해 해리 로케 대통령궁 대변인 등 보좌진은 4일 오전 “대통령의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빡빡한 일정으로 지쳐 쉬었을 뿐”이라며 “입원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저녁 육군사관학교 동창회 행사에서 “3주 전에 위·대장 내시경을 검사를 받았는데 3일 국무회의에 앞서 그 결과를 본 누군가가 재검사를 권고해 다시 검사를 받았다”고 스스로 검진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이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암이라면 암이라고 말하겠다”면서 “(암) 3기라면 더 이상의 치료는 없다. 이 직책이나 다른 직책을 유지한 채 고통을 연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바렛식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렛식도란 만성적인 위산 역류와 식도염으로 식도 점막이 원기둥 모양의 상피로 변한 것을 말하는데 이 경우 정상인보다 식도암 발병 위험도가 20∼30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헌법 상 현직 대통령이 병에 걸려 사망할 경우 부통령이 나머지 임기를 채우게 된다. 만약 두테르테 대통령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현재 부통령인 레니 로브레도가 2022년까지 나머지 6년의 대통령 임기를 이끌게 된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야당인 자유당의 지도자 출신으로 두테르테와는 각을 세우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승계 과정의 불확실성이 예상된다”며 정치 환경 변화를 우려했다.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의회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독재자로 알려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의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 개정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두테르테 대통령이 야당과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고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지난달 초에도 TV 대담을 통해 안토니오 트릴라네스 상원의원을 포함한 군인과 야권, 공산주의자들이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특히 제3국으로부터 이 같은 정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비판론자들은 이 같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주장이 야당에 대한 단속을 정당화하고, 계엄령을 내리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인 로브레도 부통령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강조하고 “계엄령이 내려졌던 시절에 야권에 재갈을 물리려고 비판 세력을 범죄자로 모는 비슷한 전술이 쓰였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16년 취임한 두테르테는 마약, 부패 등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며 범죄 용의자들을 재판 없이 사살하거나 즉결 처형하는 등의 강경책을 펴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저지른 유일한 죄는 초법적 처형”이라고 말하면서 유엔 산하 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금까지 약 4,854명의 마약 용의자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고 발표됐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1만2,000명 이상이 사살됐다고 보고 있다. 상당수의 사망자는 경찰 등 공적 기관이 아닌 자경단에 의해 발생됐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지난 2월 예비조사에 착수한 ICC는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해 지난 2년 임기와 다바오 시장 재직 중 마약 단속 명목으로 살인을 지시하고 감독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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