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백자대호(白瓷大壺)에 ‘달항아리’로 칭해 널리 보급한 이는 미술사학자인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그는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 했고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고 말했다.
넉넉하고 자연스럽게 둥근 형태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달항아리’를 소재로 화가 석철주와 최영욱이 2인전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갤러리일호에서 10일 개막한 기획전 ‘달을 품다’이다.
석철주는 캔버스를 도자기 모양, 특히 달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어 작업한다. 작가는 서양화 재료인 안료를 사용하면서도 마치 한지에 스미고 번지는 먹의 효과를 자유자재로 펼쳐낸다. 그 옛날 도공이 빚은 도자기에 각종 문양을 그려넣던 화가의 마음처럼 석철주는 백자 같은 화폭 위에 정겨운 조롱박과 들꽃을 담는가 하면 아련하고도 청아한 산수를 그리기도 한다. 실재하는 식물과 풍경일지 모르나 화가의 마음을 거치며 추상적 사유로 그 흔적만 남았다. “옛 화인들이 하얗고 둥근 항아리 모습에서 만개한 보름달을 떠올리며 도자기 위에 필묵으로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듯 이제 그의 도자기 그림은 새로운 도원경을 펼쳐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영욱 작가의 이름 앞에는 ‘달항아리’ ‘백자’가 별명처럼 따라 붙는다. 도자기를 자신의 고유한 소통 매개체로 택한 그는 도자기 표면에 갈라진 빙열까지 생생하게 만져질 듯 그린 그림으로 인생사 희로애락을 응축해 보여준다. 도자기 그 자체가 우리 인생사와 닮았기에 화가는 도자기를 그리는 것이지만 결과물은 인간 삶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가는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도자기의 선은 인생의 여러 길 같다”면서 “삶의 질곡과 애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결국엔 그런 것들을 다 아우르고 꾸밈없고 단순한 도자기의 형태와 색감은 우리 마음 밑바닥의 측은지심 같다”고 말한다.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