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고위 사제, 교황 사퇴 요구 대주교에 "정치 조작극"

한 가톨릭 대주교가 교황이 성 추문 은폐에 가담했다며 교황 사퇴를 요구한 지 약 6주 만에 교황청이 본격 대응에 나섰다.

교황청 핵심 관료 조직 중 하나인 쿠리아의 고위 사제 마르크 켈레 추기경은 지난 8월 교황의 사퇴를 요구하는 편지로 반향을 일으켰던 교황청 외교관 출신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에게 보낸 3쪽 짜리 공개 서한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저격한 그의 주장을 두고 “근거 없는 정치적 조작극”, “중상모략”이라며, 교황을 옹호했다. 켈레 추기경은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는 교황에게 적대적인 보수파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의 정적들에게 지지 받기 위해 성 학대 추문을 이용했다며, “비가노 대주교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공격은 어떤 실체적 근거도 없이 교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정치적 조작극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또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은 교회 공동체에도 심각하게 상처를 입혔다”고 덧붙였다.

주미 교황청 대사를 지냈던 비가노 대주교는 지난 8월 26일 가톨릭 보수 언론 매체들에게 보낸 11쪽 분량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지난 2013년 6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 학대 의혹에 대해 알렸지만, 교황이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대주교 출신 매캐릭 전 추기경은 1970년대에 10대 소년 성추행 의혹에 휘말리자 지난 7월 추기경 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비가노 대주교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 전 추기경에게 내렸던 평생 속죄와 기도 징벌을 무시하며 그를 복권했다며, 사제에 의한 아동 성 학대에 ‘무관용’ 원칙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성 학대 사건 은폐에 공모한 교황은 즉시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주장과 관련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신중한 판단을 당부했고, 교황청도 비가노 대주교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켈레 추기경은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에게 제기한 의혹과 관련한 교황청의 첫 공식 반응으로 보이는 이 편지를 통해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교황청 내부 자료들을 확인했지만, 전임 교황들에 의해 매캐릭 추기경에 부과된 제재가 존재한다는 어떠한 기록도 없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 추기경에 대한 징벌을 거뒀다는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켈레 추기경은는 또 비가노 대주교가 지난 2013년 6월 23일 교황에게 매캐릭 추기경에 대해 알렸다고 말한 것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교황이 그날 즉위 후 전 세계에 나간 모든 교황청 대사들을 처음 만나며, 엄청난 양의 정보와 접촉한 것을 감안하면 교황이 당시 은퇴한 지 7년이나 지난 82세의 매캐릭 전 추기경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비가노 대주교에게 “교회에 아픈 상처를 남기고, 신자들을 분열시키는 그런 가증스러운 반역으로 성직자로서의 삶을 끝내서는 안된다. 숨어 있는 곳에서 나와서, 반역을 회개하고 교황에 대한 좀 더 선한 감정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교황은 켈레 추기경의 편지가 공개되기 전날인 지난 6일 교황청 문서 보관소에 있는 매캐릭 전 추기경 관련 자료들의 검토를 명령해 교황청이 매캐릭 전 추기경에 대한 성 추문과 관련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교황의 이번 지시는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 추문이 미국 가톨릭 교회와 교황청 일부 관료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가 가톨릭 내부에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가노 대주교는 종적을 감추고 가톨릭 보수 매체를 통해 교황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