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최모(37)씨는 퇴근 후에는 대리기사로 변신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시간 외 수당이 줄어들면서 쪼그라든 월급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6시 칼퇴근 후 간단히 식사한 뒤 종로3가나 을지로3가에서 콜을 기다린다”면서 “하루에 2~3건 정도 하면 수수료 20%를 제하고 평균 4만5,000원 정도를 손에 쥔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 학원비에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투잡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이나 주말을 쪼개 ‘생계형 투잡’에 뛰어드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대기업 직장인들은 여가나 취미생활을 즐기지만 상대적으로 박봉인 중견·중소기업 직장인들은 투잡을 뛰어야 줄어든 월급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입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이 투잡에 나서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투잡을 뛰는 직장인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근로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 종사자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중 부업을 하는 비율은 지난 2016년 기준 240만6,000명으로 전체 직장인의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중소기업 종사자만 대상으로 부업 비율을 조사하면 수치는 훌쩍 높아진다. 아르바이트 포털 업체 알바몬의 올 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직장인 중 41.2%가 ‘투잡을 뛴다’고 답했다. 2년 전인 2016년에는 19.9%였다. 주52시간근무제가 본격 시행된 7월 이후부터는 이 수치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3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 적용이 유예됐지만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투잡을 뛰는 중소·중견기업 직장인 중 상당수는 대리운전기사나 편의점, 택배 상하차와 같이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양효순(62)씨는 “인근 중소 규모 공장 근로자 중 주말 알바 자리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소득이 줄다 보니 용돈이라도 벌어 볼 요량이 아니겠냐”고 추정했다. 송파구 일대에서 택배 상하차 단기 알바 인력을 모집·운영하는 우모(40)씨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투잡족은 1주일에 5명에 불과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20명은 돼보인다”며 “주말이나 공휴일에 특히 문의 요청이 쇄도한다”고 설명했다.
투잡족이 늘어나며 일선 노동현장은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이른바 을과 을 간의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리운전시장이 단적인 예다. 김종용 대리기사협회장은 “지난해 15만명 수준이던 대리운전기사가 올해 25만명으로 증가했다”며 “오후6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일하면 통상 7만~10만원은 벌었는데 요즘은 절반도 못 번다”고 전했다. 대리기사로 새로 유입된 인력의 상당수는 근로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 재직자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정부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준다고 각종 정책을 시행하는데 실상은 저녁을 굶는 삶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