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이 냉각된 가운데 국내증시가 연중 최저치로 추락하고 신흥국 불안에다 믿었던 미국 주식시장마저 흔들리면서 시중자금이 머니마켓펀드(MMF)·단기채펀드 등으로 쏠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시장에서도 특정 지역이나 종목 투자 같은 기존 방식이 아닌 양매도 상품이나 진입 문턱을 낮춘 헤지펀드 상품이 뜨고 있다. 투자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갈 곳 잃은 돈이 수익보다 자금을 지키기 위해 안정적이고 일시적인 ‘자금 정거장’ 성격의 ‘회색지대’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MMF와 단기채펀드 시장에 각각 19조7,319억원, 2조6,804억원 등 총 22조4,123억원이 유입됐다. 같은 기간 액티브주식형펀드에서 6,787억원, 국내혼합형펀드에서 5,324억원이 이탈한 것과 비교하면 이들 펀드는 시장의 자금 블랙홀인 셈이다.
박스권을 넘어 증시가 약세장으로 전환하면서 기존과 차별화된 양매도 상품, 일반인을 타깃으로 한 헤지펀드 상품 등에도 관심이 쏠린다. 양매도 상품은 콜옵션과 풋옵션을 동시에 매도해 지수와 상관없이 박스권에서도 꾸준한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자산가들의 전유물이었던 헤지펀드 시장에 대해서도 일반인들의 관심이 커졌다. 헤지펀드에 500만원으로도 투자 가능한 사모재간접공모펀드에는 증시가 부진했던 지난 6개월 동안 전체 설정액(1,924억원)의 70%가량이 유입됐다.
MMF의 경우 8월 말 터키 금융불안 확산으로 카타르국립은행(QNB) 등 자산 일부를 터키에 투자한 은행의 정기예금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의 부실화 우려에도 자금유입이 꾸준하다. 특히 코스피가 8거래일 연속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인 최근 일주일 사이 9조3,619억원이 몰렸다. 단기채 대표 펀드인 ‘유진챔피언단기채증권자투자신탁’은 최근 설정액이 3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단일 펀드로는 이례적으로 3조원이 훌쩍 넘는 초대형 펀드로 급성장한 것이다.
자본시장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요구불예금, 일명 ‘잠자는 돈’이 늘고 있다. 투자처가 모호해지면서 보수적 자산가들 역시 이자가 거의 없는 수시입출금 상품에 자금을 넣어놓고 시기를 관망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7월 말 19.7회로 집계됐다. 이는 올 1월의 20.9회보다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서 돈이 얼마나 활발히 순환됐는지 돈의 유통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수치가 낮을수록 돈이 돌기보다 은행에 묶여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단기 자금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투자자들의 투자 시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이들의 불안심리가 극에 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신지윤 KTB 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은 “단기채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수익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투자처가 불분명해지면서 투자 시기를 관망하자는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며 “예적금보다 이자가 낮은데도 단기자금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돈을 일시적으로 넣어두고 언제든 투자처가 생기면 바로 갈아타겠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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