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중동의 주요 동맹국인 사우디 왕실의 카슈끄지 살해 정황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국제사회 압박은 물론 다음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악영향을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을 살피며 이 같은 발언을 내놓았다는 게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불가피하게 사망을 인정했지만 사우디에 완전히 등을 돌리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사우디를 다시 지지할 수 있게끔 해석의 여지가 있는 말을 남겨 여전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카슈끄지가 죽었느냐”는 질문에 “분명히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매우 슬픈 일”이라고 답했다.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카슈끄지 사태를 다루며 파장이 커지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측근 연루설도 잇따라 불거지면서 더 이상 사우디를 두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우디에 대한 대응 방침을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가혹(very severe)할 것”이라면서도 “진상을 규명할 수 있도록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며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사우디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복잡해진 사우디와의 외교 셈법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많다. 국제사회 여론을 고려해 카슈끄지 사망을 인정했지만 사우디가 갖는 외교적 장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우디는 중동 국가 중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자 최대 무기 수출국인 만큼 사건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면 사우디 왕실의 의도처럼 ‘꼬리 자르기’를 통해 봉합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가 수세에 몰린 틈을 타 터키·이란 등이 세력을 과시하며 중동 역학구도 재편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터키는 카슈끄지가 사라진 이스탄불 총영사관 내부에서 카슈끄지가 숨질 때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확보했다는 정보를 조금씩 언론에 흘리며 사우디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반면 사우디와 각을 세워온 터키와 이란은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누리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중동 정세의 변화를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