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카슈끄지 살해를 통해 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

원제 What Khashoggi‘s apparent murder says about Saudi Arabia -- and America

사우디 지배층 내부 심각한 갈등

부도덕한 전제정권 붕괴 기시감

美해외정책 근간은 존경과 정직

트럼프 이후 중동외교 원칙 흔들

파리드 자카리아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자말 카슈끄지의 명백한 살해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관해 우리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해준다. 또한 그의 피살은 미국에 대한 중요한 사실도 함께 일러준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이미 여러 차례 주목받았듯 카슈끄지는 사우디 기득권층에 속한 인물이다. 사우드 왕가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명문가 태생으로 고위층과 연줄이 닿아 있었다. 그는 사우디의 주요 신문 편집장으로 왕실을 위해 일했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14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사우디를 방문해 리야드와 제다에 1주일간 머물렀는데 카슈끄지는 그때 내게 도움을 줬던 현지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 무렵 카슈끄지는 오랫동안 사우디 정보부를 이끌면서 영국 주재 대사로 재직하다 훗날 미국 대사로 자리를 옮긴 투르키 파이살 왕자의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다.

파이살 국왕의 아들 중 한 명인 투르키는 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지닌 사우디의 2인자였다.

당시에도 카슈끄지는 진보주의자이자 개혁가였으나 언제나 온건하고 점진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지나친 개혁에는 무리가 따른다며 우려를 표명하던 그는 지난 2005년 내가 진행하던 PBS쇼 ‘포린 익스체인지’에 출연해 “극렬분자들에게 사우디 정부가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슈끄지는 성급한 개혁으로 “사우디 사회가 해체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속도조절론을 제시했다.

전제주의와 현실적 개혁을 뒤섞어놓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접근법을 지켜보며 카슈끄지는 점차 비판적이 됐지만 그렇다고 극단주의자로 변신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우디 지배층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사우디 기득권층 내에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버드대의 타렉 마수드에 따르면 카슈끄지 사건은 사우디 지배층 내부에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전제정권 붕괴에 관해 연구한 새뮤얼 헌팅턴은 지배층을 형성하는 엘리트들 사이의 마찰은 거의 언제나 광범위한 정권의 붕괴를 가리키는 전조였다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찰국가가 아닌 후원국가였기에 안정을 유지해왔다.


사우디 왕국은 비판론자들과 반대자들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다스렸으며 특히 강경한 성직자들을 다루는 데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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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직후에도 사우디 정부는 민간인들에게 제공되는 보조금을 대폭 인상하고 공무원들에게 후한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매수전략을 구사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사실 아랍의 봄이 준 교훈은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의 예에서 보듯 억압이 뇌물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MBS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사우디 왕세자는 사업가들을 갈취하고 운동가들을 투옥하며 언론매체를 통제하고 급기야 칼럼니스트까지 처형해가며 경제·사회·종교 분야의 개혁을 자신의 권력 강화와 뒤섞는 방법으로 사우디의 후견국가 모델을 경찰국가 모델에 바짝 접근시키고 있다.

이 같은 행위의 부도덕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여기에 동원되는 무자비한 조치들은 장기적으로 불안정을 초래하게 된다.

무바라크는 버티지 못했고 알아사드는 자신이 지배하는 영토가 축소되고 그나마 대부분이 초토화되는 호된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지독한 반 이란주의자였던 MBS는 독재자이면서도 서구 엘리트들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이란의 샤만큼이나 중동지역의 그 어떤 지배자도 닮지 않았다.

빈 살만은 복잡한 인물이다. 일부 부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전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오히려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슈는 미국의 해외정책이 개인 성격에 근거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관은 김정은에서 앙겔라 메르켈과 MBS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도자들에 대한 자신의 호불호에 온전히 뿌리를 박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태도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해외정책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맹목적으로 하청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워싱턴은 예멘과의 전쟁을 확대하고 카타르를 봉쇄하며 터키와 날 선 설전을 벌이고 레바논 총리를 납치한 사우디 왕국을 사실상 지지해왔다. 그리고 이 같은 움직임은 대부분 실패했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국익과 가치에 근거해야 하는데 이들이 어느 한 국가와 완전히 일치하는 법은 결코 없다.

역사적으로 이는 미국이 모든 주요 국가들의 존경을 받는 정직한 중개인이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덕분에 헨리 키신저는 왕복외교를 수행했고 소련 진영에서 이집트를 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지미 카터는 캠프데이비드 협정 체결에 큰 도움을 받았다.

빌 클린턴에서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부가 아랍 우방국에게 진지한 정치개혁을 수행할 것을 촉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모두는 섬세함과 세련미, 그리고 부단한 고급 외교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유세계의 리더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지금 우리는 오랫동안 차지해온 이 자리를 비워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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