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프랑스 더웨스틴파리방돔호텔.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한불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이 환영사에 나섰다. 그는 문 대통령과 우리 기업인들에게 “미국보다 프랑스에 투자하는 것이 한국에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떠올라서였을까. 좌중은 웃음을 지었지만 프랑스 장관의 자신감은 돋보였다. 그는 법인세 감소와 노동개혁을 프랑스의 장점으로 소개했다. 정책이 유연하며 프랑스가 굉장히 많이 변했다고 했다. ‘프랑스 엔지니어 인건비가 미국보다 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빈말이 아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실제로 노동 유연화, 공무원 감축, 세율 인하 등 구조개혁을 쉴새 없이 추진하고 있다. 노조 강국 ‘병든 프랑스’로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저항을 부르고 지지율은 하락했다. 그러나 경제가 꿈틀댄다. 지난해 6년 만에 최대인 2.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전 세계의 정보기술(IT) 거물과 스타트업들이 파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지난 9월 프랑스 국회를 통과한 ‘기업의 성장과 변혁을 위한 행동계획(Pacte)’ 법안도 주목할 만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인 규제를 걷어냈다. 공기업 지분을 매각해 혁신성장에 쓴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프랑스의 변신에 우리 기업들도 화답했다. 삼성전자는 파리에 인공지능(AI)연구센터를 세웠다. 은둔의 경영자 이해진(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이 프랑스에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제2의 라인’을 꿈꾼다. 현대차는 우리나라보다 파리에서 수소차 세일즈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기업환경은 암담하다. 글로벌 기업 유치는커녕 자국 기업들도 이탈한다. 최근 기자와 만난 고위 당국자는 “기업 투자 담당 임원들에게 전화하면 베트남에 가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려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설비투자 전망치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경상수지 흑자는 시설재 수입이 줄어든 효과를 보고 있다니 웃을 일이 아니다. 반도체라는 외줄을 탄 ‘불황형 흑자’가 아슬아슬하다.
이번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서 해외 정상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경제 발전에 경의를 표했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한국이 그간 이룬 업적들을 굉장히 흠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그 성공의 유전자가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되레 각종 규제와 사정·인허가보다 무서운 ‘떼법’에 반기업정서까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오죽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현대차 사장이 “충전소 좀 세워달라”며 대통령에게 호소해야 하겠는가.
문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변화를 보고 온 소감을 묻고 싶다. 우리 정부는 해외 정상과 기업들을 불러 무엇을 세일즈할 것인지도 듣고 싶다. 남북경협의 효과를 논하고 있기에는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절박해 보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