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중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자 양국의 이익은 고도로 융합돼 있다”면서 “아베 총리가 최근 여러 차례 중일 관계의 발전과 개선을 표명한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더 긴밀한 국제협력과 공동이익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 경제 일체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양국이 함께 세계적인 도전에 맞서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수호해 개방형 세계 경제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이번 방중을 통해 양국이 경쟁에서 협조로 가는 신시대를 열기를 바란다”면서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중국 발전 프로세스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화답했다.
이처럼 소원했던 양국 관계의 개선을 강조한 중일 양국은 이날 오전 경제 협력을 위한 선물을 맞교환하며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 제3국 인프라 개발 협력, 양국 중앙은행의 스와프 협정 재개, 첨단기술 협력, 지식재산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 ‘이노베이션 협력 대화’ 설치 등에 합의했다.
리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80억달러 규모의 500개 경제협정이 중국과 일본 기업들 사이에 체결됐다”며 “이는 양국 간 협력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아베 총리 역시 “제3국 시장에서 일중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틀이 탄생했다”며 “1,000명이 넘는 양국 경제인이 모여 많은 협력문서에 합의한 게 그 증거”라고 맞받아쳤다.
또 중국은 시 주석이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도 일본 측의 참여를 환영한다면서 일본 측에 ‘선물’을 안겼다. 이날 발표된 양국 간 경협 사업에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와 노무라홀딩스 등 일본 금융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규모 공동 투자펀드 조성도 포함됐다. CIC와 일본 금융권은 공동으로 최대 18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중일 간 경협과 제3국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건설은 중일의 협력을 심화하는 데 새로운 플랫폼과 실험의 장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일본이 더 적극적으로 신시대 중국 발전 프로세스에 참여하고, 더 높은 수준의 상호 공영을 실현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일본을 지원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7년 만에 일본 총리를 초청한 중국은 그동안 껄끄러웠던 일본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함께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일본도 미 보호무역 리스크를 덜어내고 아베 총리의 외교성과를 챙기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속내여서 양국의 밀월 행보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 비핵화가 양국 공통의 목표라며 이를 위해 책임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치 등 일부 문제는 관계 정상화에 앞서 해결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시 주석은 관계 개선을 강조하면서도 상호이익과 협조를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 역사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대만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전과 같은 입장을) 견실하게 따르고 보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저녁에는 시 주석 부부가 주재하는 공식 만찬에 참석했다. 아베 총리의 방중으로 시 주석의 내년 일본 방문도 유력해졌다. 외교가에서는 내년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 참석을 계기로 시 주석의 방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영유권 이슈와 역사 문제 인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갈등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전날 남중국해에서 미군으로부터 연료를 공급받는 해상자위대 함정 모습을 공개하며 미국과의 긴밀한 군사 공조를 과시했다. 중국 역시 전날 양국 영토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해경선을 보내 위력 시위를 벌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아베 총리가 중국에 경제적으로는 여러 선물을 준비했지만 미국을 의식해 정치적으로는 신중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