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회당(시너고그)에서 극우 성향의 40대 백인 남성이 27일(현지시간) 총기를 난사해 현장에서 11명이 숨지고 경찰 4명을 포함해 6명이 부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순항 여부를 좌우할 11·6중간선거를 9일 앞두고 잇따라 대형 증오범죄가 발생하면서 미 전역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반(反)유대인 범죄로 기록될 이날 총격사건은 오전10시께 피츠버그 앨러게이니 카운티의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 시너고그에서 일어났다. 피츠버그 도심에서 10여분 떨어진 이곳은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범인은 유대교 안식일인 매주 토요일 오전 예배시간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피츠버그 경찰에 따르면 총격범은 권총 3정과 자동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예배 중인 회당에 침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사건 당시 시너고그에서는 아기 이름 명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목격자들은 “총격범이 유대인을 비난하는 말을 계속 떠들면서 총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 웬덜 히스리치 피츠버그시 공공안전국장은 “사건 현장이 매우 끔찍하다”면서 “지금까지 내가 봤던 것 중 최악”이라고 말했다.
총격범은 출동한 경찰과 교회당 입구에서 대치하며 총격을 벌이다 부상한 뒤 체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피츠버그 주민인 백인 남성 로버트 바우어스(46)로 확인됐다. 바우어스는 인터넷 등에 반(反)유대주의 선동을 수차례 게재한 경력이 있는 극우 인사로 조사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우어스가 극우 인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갭닷컴(Gab.com)’ 계정에 ‘유대인은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특히 범인은 사건 발생 몇 시간 전 갭닷컴에 “침략자 유대인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다”며 “내가 개입할 것”이라고 올려 범행을 시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여론은 10여개의 ‘폭발물 소포’가 반트럼프 인사들에게 배달돼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데 이어 반유대주의를 겨냥한 총기사건까지 발생하자 성격은 다소 달라도 ‘증오범죄’라는 공통점에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빈발해도 종교시설을 직접 겨냥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최근 심심치 않게 발생해 미 전역에 증오범죄에 대한 충격과 두려움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최대 유대인단체인 ADL은 미국 내 반유대주의 범죄가 2016년 1,267건에서 지난해 1,986건으로 57%나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증오범죄는 갈등과 분노를 원천으로 번지기 때문에 ‘백인 우월주의’ 등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성향에 대한 논란이 이번 총기참사로 한층 커지게 됐다. 앞서 ‘폭발물 소포’가 연쇄적으로 발견되자 공화당 소속의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지사조차 “트럼프는 일만 생기면 비난할 대상을 찾고 사람들을 자극한다”면서 “그러면 불안정한 누군가가 미친 짓을 한다”고 꼬집었다.
선거를 앞두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다 정치적 악재가 될 수 있는 대형 테러사건이 계속 발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사악한 ‘반유대주의’ 공격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며 “우리는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부정적 여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이어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31일까지 조기 게양을 지시하고 조만간 피츠버그 사건현장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회당 안에 보호할 방안이 있었다면 아주 다른 상황이 됐을 것”이라며 총기규제 대신 총기사건 예방에 더 많은 무장경비원 배치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