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금리 인상을 예고한 한국은행이 최근 증시 폭락과 경제지표 부진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에 퍼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말에 “현재 하방 압력이 좀 커 보이며 그런 것을 전부 같이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 전 열린 국감 때 이 총재가 “인상 여부는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며 사실상 11월 금리 인상을 예고했을 때와는 어조가 달라진 셈이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낼 때마다 ‘경기와 물가 등 거시지표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때’라는 전제를 달았는데, 경제지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가장 잘 와 닿는 증시 폭락은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1,996.05로 마감하며 22개월 만에 2,000선이 무너졌다. 이달에만 14.81% 급락했는데 월간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23.13%) 이후 최대 낙폭이다. 다음 금융통화위원회(11월30일)까지 한 달가량 남은 만큼 증시가 회복되거나 변동성이 줄어들 여지는 있지만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코스피 지수가 11.86% 급락했던 2011년 8월에도 당시 경기가 호조인데다 물가상승률도 높아 지표만 보면 충분히 기준금리를 올릴 상황이었지만 당시 갑작스러운 증시 폭락에 금통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했다. 2008년 10월에는 한 달에 기준금리를 1%포인트나 내렸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도 하나같이 잿빛이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서 11월 전망치는 90.4로 전월(97.3) 대비 하락했다. 올해 들어 전월과 비교해 가장 큰 폭으로 내린 것이다. BSI 전망치가 100을 웃돌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지난 25일 한은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도 3·4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이 전기대비 0.6%에 그치며 부진했다.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경기나 물가를 보면 금리를 올릴 상황이 아니고 부동산 안정은 금융과 세제로 다뤄야 한다”며 “다음 달에도 증시 변동성이 크고 외국인 매도가 이어진다면 통화정책도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