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2,000선마저도 붕괴하면서 한국 증시는 이견 없는 약세장에 진입했다. 전문가들은 각종 악재가 해소될 기미가 없는데다 기업들의 ‘어닝쇼크’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투매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증시 하락이 끝없이 이어지자 증권가에서 제시하는 코스피 전망치 하단도 1,900까지 낮아졌다.
29일 장 초반 반등의 기미를 보였던 코스피가 2,000선 사수에 실패하자 증권가에서는 비관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기술적 지지선으로 여겼던 2,100에 이어 ‘설마’ 했던 2,000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비이성적 하락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조차 모르겠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무역분쟁과 미국의 금리 인상, 경기둔화 우려 등 그동안 증시를 아래로 잡아끈 묵은 악재들 외에도 대장주들의 어닝쇼크가 타격이 컸다. 지난주 시가총액 5위의 자동차 대장주였던 현대차의 3·4분기 영업이익이 76%나 급감해 시가총액 7위로 밀려났고 인터넷 대장주인 네이버도 영업이익이 29% 감소해 불안한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화장품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은 3·4분기 영업익이 36%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매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24·25일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총 7,871억원어치를 내던진 데 이어 이날은 하루 만에 7,94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특히 증권사에서 신용융자로 자금을 빌려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의 반대매매까지 더해지면서 수급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주가가 급락해 담보가치가 떨어지거나 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는데 투자자가 투자로 증거금을 더 내지 않으면 증권사는 해당 투자자의 주식을 강제로 매도하는 반대매매에 나선다. 이날도 코스닥이 5% 넘게 급락하면서 30일 개장 직후 반대매매 매물이 대거 출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가뜩이나 불안에 휩싸인 시장에 더욱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증시에 대한 기대치도 대폭 낮추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월간 전망 보고서를 통해 11월 코스피지수 전망치를 1,900~2,150대로 낮춰 제시했다. 지난 10월 전망에서는 2,300~2,500을 제시했지만 한 달간의 급락장을 겪으면서 전망치도 대폭 조정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강화 기조와 미국·중국 무역분쟁으로 코스피가 1월 말 고점 대비 약 22% 하락하며 약세장에 진입했고 당분간 반등의 신호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 때문이다. 최근 30년 동안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약세장에 돌입한 사례는 1989년 미국 저축대부조합 사태, 1994년 멕시코 페소화 급락,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 네 차례에 불과했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00포인트 붕괴를 예상조차 하지 못했고 투자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며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1,993.77까지 하락하며 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 초반 1% 가까이 오르는 등 반등의 기미가 나타났지만 오히려 늦게라도 차익 실현에 나서려는 개인과 외국인의 매도세가 더욱 거세지면서 가파른 급락으로 이어졌다. 삼성증권과 키움증권도 눈높이를 낮춰 각각 1,950~2,120, 1,950~2,150대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지난달(2,300~2,450)보다 대폭 하향 조정된 2,000~2,200을 제시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자산가격을 결정하는 제1 변수인 채권금리가 최근 들어 많이 오른데다 무역분쟁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며 “코스피는 당분간 조정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11월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미국 중간선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등은 반등의 계기는커녕 증시 변동성을 더욱 키우는 악재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경제위기·금융위기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희망적이다. 중국의 경기둔화, 이탈리아 예산안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과거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과거 증시가 출렁일 때 쉽게 달러당 1,200~1,300원까지 상승했지만 이번에는 1,150원도 채 넘기지 못하는 등 안정적인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