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랭이라는 스코틀랜드 문학가가 “사람들이 통계를 이용하는 것은 마치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술 취한 사람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가로등을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 데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통계를 사실을 밝히기 위한 원래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 1·4분기와 2·4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하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전년 대비 약 8%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과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저소득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증거라고 해석한 반면 진보적인 언론과 정부에서는 가계동향조사의 표본 추출 방식이 지난해와 달라져 1인 가구와 고령 가구 등이 표본에 더 많이 포함됐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한편 통계청에서는 가구주의 연령이나 가구원 수의 분포를 지난해와 동일하게 가정하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므로 표본의 대표성 및 시계열적 연속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가 그 뒤 다시 지난해와 올해의 수치를 직접 비교할 때 표본 구성의 변화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함으로써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일자리 예산을 포함한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약 162조원으로 전체 예산의 34.5%나 된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걸린 복지·노동 분야의 정책들을 제대로 수립하고 평가하기 위해 정확한 가계 통계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최근의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논란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가계동향조사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가계동향조사에서 얻어진 소득분배 지표와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얻어진 소득분배 지표 간 괴리 때문이었다.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세부적 지출 내역과 소득을 모두 조사하는 자료의 특성상 고소득층의 응답률이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소득분배를 파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 결과 지난 2017년부터 가계 소득은 가계금융복지조사로 파악하고 가계동향조사는 가계 지출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힌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계와 연구소에서 이처럼 소득과 지출의 표본이 이원화되는 것과 분기마다 이뤄지는 가계동향조사와 달리 연간 자료인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소득의 분기별 변동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는 시각이 있었다. 또 정부도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저소득층에 미치는 효과를 보다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분기별 가계 소득 자료를 필요로 하게 됐다. 따라서 폐지 예정이던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부문을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뤄졌고 그 결과 올해 같은 혼란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랭이 지적한 바와 같이 통계는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통계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각 통계의 목적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표본의 단절로 지난해와 올해의 숫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올해 1·4분기, 2·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나타난 하위 20%의 소득 증가율은 전국 조사가 이뤄진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반대로 상위 20%의 소득 증가율(약 9.8%)은 가장 높은 수준인데 소득분배가 한 해 만에 그렇게 악화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앞으로 재설계로 고소득층의 응답률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가계동향조사를 소득분배의 기초자료로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분기별 조사의 특성상 소득 파악이 정확하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부문은 특정 집단에 대한 정책 효과를 파악하는 등의 미시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경제 전체의 소득분배를 파악하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종이를 자를 때는 가위를 쓰고 병을 딸 때는 병따개를 쓰면 된다. 소위 ‘맥가이버칼’은 보기에는 멋질 수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