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증시안정펀드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12월12일 오후7시 이규성 재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했다. 3저 호황을 타고 그해 4월1일 1,000포인트를 넘었던 종합주가지수가 갑자기 고꾸라지더니 회견 전날에는 844.75까지 떨어졌다. 8개월 만에 20% 가까이 폭락하자 증권사 객장에서는 주가하락에 항의하는 투자자들이 전광판을 깨뜨리는 등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이 장관은 비장한 표정으로 “증시가 안정될 때까지 투자신탁회사가 무제한으로 주식을 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무제한 자금지원은 누가 하느냐는 질문에 이 장관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주가하락을 막겠다”고 답했다. 이른바 ‘증권판 12·12사태’로 불리는 12·12증시안정대책이다. 바로 다음날부터 한국투신·대한투신·국민투신 등 3대 투신사는 주식을 쓸어담았다. 연말까지 이들 투신사가 순매수한 금액은 2조7,600억여원. 당시 거래대금의 40%에 달하는 규모로 매수자금은 모두 은행에서 빌렸다.


조치 후 정부 기대대로 종합주가지수가 100포인트 정도 올랐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곤두박질치자 다급해진 정부는 이듬해 5월 증시안정기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증권사에 은행·보험도 모자라 상장사까지 동원해 4조원 규모의 주식보유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이를 통해 수시로 주식시장에 개입해 주가를 떠받치겠다는 의도였다. 증안기금이 구원투수로 나서 3조원어치나 샀는데도 주가는 속절없이 하락해 1992년 8월 종합주가지수는 456포인트까지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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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증시부양책이 초래한 후유증은 컸다. 특히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느라 골병이 든 투신사는 자본금이 전액 잠식된 부실회사로 전락하고 증안기금이 거의 소진되면서 증권사 등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처음에 3년만 운용한다던 증안기금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수명이 수년간 연장되며 선거를 앞두고 민심무마용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름과 형태를 조금씩 달리하지만 이후에도 정부 주도의 주가 떠받치기 대책은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증권거래소 등 증권유관기관들이 5,000억원을 공동 출연해 증시안정펀드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 주가급락에 놀란 정부가 증시안정펀드를 10년 만에 부활시킬 모양이다. 민관이 함께 5,0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는 소식이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증시는 억지로 부양한다고 살아나는 게 아닌데 걱정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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