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밤 민주노총 경북지부 소속 조합원 60여명이 경북 김천시청에 몰려들었다. 이 중 5명은 재빨리 시장실을 점거했고 농성은 이튿날에도 풀리지 않았다. 시청 앞에 모인 조합원들은 확성기를 틀어대고 욕설을 날리며 청사 돌파를 시도했다. 시청 직원들은 조합원들의 청사 진입을 차단하려고 모든 출입문을 막은 채 버텨야 했다. 공성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지만 출동한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과 함께 세를 불리는 민주노총이 전국 곳곳에서 관청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기 위한 투쟁수단이다. 대구에서는 지방고용노동관서장을 전(前) 정부의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고 “감옥에 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점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달 기준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올해 들어 최소 다섯 군데의 관청을 점거했거나 현재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천시장실을 점거한 민주노총 경북지부는 방범용 폐쇄회로(CC)TV 상황실의 계약직 근로자 36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는 지난달 사측의 정규직 전환을 압박할 목적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했다 고용노동부 중재로 20일 만에 풀었다. 한국GM 비정규직 노조도 마찬가지 이유로 국정감사 기간에 맞춰 고용부 창원지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이 밖에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지회도 사측의 직접고용을 외치며 고용부 경기지청 부속실에서 농성 중이다. 특히 대구에서는 민주노총 대구본부 조합원들이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실을 점거한 채 권혁태 청장을 “사퇴시키고 감옥에 보내라”는 살벌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 청장은 박근혜 정부 서울고용청장으로 재직할 당시 삼성전자 서비스 노조 파괴 의혹에 연루됐으며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노조 대응과 관련한 고용부 회의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직책상 의무 참석이었고 노조 파괴 공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강하게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고용부와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미적거리며 의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점거농성이라는 과격한 방식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엄연히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인데다 민주노총의 잇단 농성으로 각종 노동 및 시민 행정에 차질을 빚어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김천시의 한 관계자는 “시 정부는 우선순위를 고려해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 절차를 밟으려 하는데 민주노총은 사실상 소속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 먼저 전환을 해달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노동자를 위한 노조가 아니라 이익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의 점거투쟁이 시대에 뒤처져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점거농성 자체가 명백히 불법일뿐더러 지금은 폭력·강경투쟁 방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대화를 통해 노동계의 요구를 전달하고 협상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서울고용청 민원실을 점거하는 바람에 정작 임금 체불, 근로시간 같은 문제를 상담하러 왔던 근로자들이 상당수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의 세력 경쟁이 치열해지며 자극적 투쟁 방식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대응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건드렸다가 노동계 탄압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인명피해 가능성도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방고용관서를 점거할 경우 퇴거를 정식으로 요구하고 경찰에 시설 보호도 요청하지만 인명피해 염려로 점거를 강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털어놓았다. 다만 서울고용청은 최근 청사 점거를 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를 건조물침입행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남대문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다.
/이종혁·김우보기자 김천=이현종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