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한국경영자총협회 내부 회계부정·횡령 의혹을 사실로 판단하고 김영배 전 경총 상근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김 전 부회장은 지난 2004년부터 올해 2월까지 14년간 상근부회장을 지냈다. 정부가 노사 현안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경총에 적폐 낙인을 찍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는 올해 9월3일부터 7일까지 실시한 경총 지도·점검 결과를 1일 발표했다. 고용부는 “지도·점검 결과 비영리법인 운영 등과 관련한 사안에서 5건, 정부 용역사업과 관련한 사안 4건 등 총 9건의 지적사항을 발견했다”며 “지적사항 중 3건은 법원에 과태료 부과를 의뢰하고 형법 위반 소지가 있는 2건은 관할 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4건은 정부에서 수당을 환수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수사 대상 임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정황상 김 전 부회장이 대상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총은 김 전 부회장의 후임이자 고용부 출신인 송영중 전 상근부회장이 취임 3개월 만에 물러난 뒤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고용부의 강도 높은 감사를 받았다. 송 전 부회장은 경총 내부에서 “친노동적 성향”이라고 비판받으며 불화를 일으켰다. 그는 또 김 전 부회장이 일부 사업 수입을 이사회·총회에 보고하지 않고 임직원에게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손경식 경총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고용부는 감사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
고용부는 우선 김 전 부회장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유학 중인 임원 자녀의 학자금을 한도보다 6,000만원 초과해 지원했다며 “횡령·배임 가능성이 있어 수사 의뢰를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업무추진비로 사용처를 알 수 없는 상품권 1억9,000만원어치를 구입해 임원에게 전달한 것도 수사 의뢰 대상이다.
고용부는 또 경총 임원들이 일부 수익을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거나 골프 회원권을 경총 재산 목록에서 누락한 사실을 적발해 과태료 부과를 의뢰하기로 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특별상여금 약 67억원을 이사회 승인 없이 임직원들에게 수표·현금으로 지급한 것도 과태료 대상이다. 이 밖에 고용부는 경총이 2010년 이후 고용부나 한국산업인력공단·노사발전재단 등의 용역사업을 수행하면서 수당을 임원들이 유용하거나 실적을 위탁기관에 허위보고한 사실도 적발했다.
경총은 감사 결과에 대해 “송 전 부회장이 문제를 제기했고 고용부가 조사를 했다”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오는 7일 이사회를 통해 회계·예산 혁신안을 확정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운영 안을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고용부는 사상 첫 경총 수사 의뢰와 관련해 “경총에 해를 끼친 임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에 맞서 사용자 입장을 대변해온 경총에 ‘적폐’ 낙인을 찍어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