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찬수 병무청장은 필요하다면 예술·체육 특기자 병역특례 폐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병역특례제도는 지난 1973년 국위 선양과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인에게 군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8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야구 대표선수 선발 논란과 예술계에서 해외 콩쿠르 수상자를 둘러싼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특례 폐지를 포함한 재검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45년 전 만들어진 엘리트 육성책이 수명을 다했으며 병역 형평·공정성 시비를 계속 불러온 만큼 특례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데 동기 부여가 필요하며 폐지보다는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보완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체육·예술 특기자에 대한 병역특례. 아무리 생각해도 기형적인 제도다. 우리와 같이 예술 및 체육 분야 인사를 대상으로 그들이 모종의 대회에서 특별한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병역특례를 주는 나라가 있는가.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징병제를 택한 국가는 13개국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그 어느 나라도 예체능 특기자에게 병역 면제 또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
체육·예술 특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역특례제도는 1973년에 만들어졌다.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체제 경쟁의 대상이었던 북한에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 후다. 특례의 명분은 ‘국위 선양’을 위한 체육 엘리트 육성에 있었다. 병역특례제도가 만들어졌던 45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상황과 시대정신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화돼 있을 뿐 아니라 병역특례에 대한 기준도 국위 선양이 아닌 형평성과 공정성을 중심으로 인식이 변화했다.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에서 스포츠나 예술의 어느 한 분야가 국위 선양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최근 축구 대표팀 모 선수가 체육요원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544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을 허위로 제출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립발레단 소속 무용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수상한 1등상의 성격과 가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쏟아져나온 ‘우리의 병역특례제도가 국제 콩쿠르 주최 측에 무참하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지적은 특례제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감독은 ‘병역 브로커’로, 선수는 ‘병역 면제 원정대’로, 메달은 ‘로또 금메달’로 불리며 스포츠의 순수성이 조롱당하며 의심받았던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예술·체육인의 병역특례에 따른 문제를 일부 개인의 일탈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도 자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몇 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다.
첫째, 제도의 취지에 비춰 병역특례가 이 시대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과 국제대회 우승이 국위 선양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병역특례로 오히려 국가의 품격과 위상이 훼손되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의 축구 3·4위전에서 패한 일본의 변명은 다름 아닌 ‘군 면제 받으려고 뛰는 한국 팀은 당해낼 수 없다’는 비아냥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마약을 맞고 경기에 임한다’는 외국 기자의 조롱 섞인 비평, 축구 우승 그 자체보다 손흥민 선수에게 쏟아진 병역특례에 대한 외신의 관심은 메달의 가치를 무색하게 할 뿐 아니라 땀 흘려 뛴 선수들의 영광을 가리고 응원을 아끼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둘째, 운영의 측면에서 형평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 병역특례의 문제는 예체능 모두 특정 종목과 소수 분야로 국한된다. 더욱이 같은 종목과 분야 내에서도 병역특례로 인정받는 대회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형평성의 문제는 크다. 예컨대 아시안게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인 월드컵 대회에서 설혹 우승한다 할지라도 현재 규정으로는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없다. 국위 선양의 관점에서 보면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 스타 대중예술인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셋째, ‘정점에 있는 선수의 기량을 보존해야 한다’는 온정적 생각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병역특례제도는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이다. 우승하지 못했지만 기량이 뛰어난, 다음의 우승을 위해 병역 면제가 절실한 절대다수의 선수들은 군에 가야 한다. 특례 취지의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마치 ‘군에 가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는 것’처럼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희화화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병역 유예기간을 충분히 부여해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여건을 보장하고 적당한 시점에 정해진 공익활동으로 명예롭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병역 면제가 ‘포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