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프로 선수가 한 홀에서 18타를 친 일이 화제가 됐다. 올 시즌 28세의 나이로 정규 투어에 데뷔한 늦깎이 신경철이라는 선수가 주인공이다. 지난 1일 제주 세인트포골프장에서 열린 A+라이프 효담 제주오픈 1라운드 4번홀(파4). 그는 드라이버로 세 번, 2번 아이언으로 두 번 등 티샷으로만 아웃오브바운즈(OB) 5방을 냈다. 이어 페어웨이에서도 두 차례의 OB를 보탠 그는 16타 만에 그린을 밟았고 두 차례의 퍼트를 보태고서야 이 홀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 홀 OB 7개와 18타는 KPGA 투어 신기록(?)이다.
신경철은 ‘아마추어 스코어’라는 조롱을 받기는커녕 포기의 유혹을 이겨낸 당당함으로 조명을 받았다. 이날 1번홀에서 출발한 그는 경기 초반이었던 만큼 기권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기권하면 그날의 기록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나머지 14개 홀을 모두 플레이했다. 스코어는 20오버파 92타. 스코어카드를 제출했기에 이날 기록은 고스란히 남게 됐다. 경기 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샷이 아무리 안 되고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프로로 경기를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주인공이 돼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성적이 좋았을 때와 좋지 않았을 때 모두 내 기록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인 골프나 스포츠의 세계에서 신경철의 완주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반대 사례가 적지 않다는 현실의 방증일지 모른다.
요즘 프로골프 투어에서는 선수들의 기권이 잦아졌다. 이번 시즌 남녀 각각 1개씩의 대회를 남겨둔 가운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27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모두 93건의 기권이 기록됐다. KPGA 투어는 16개 대회, 37건으로 집계됐다. 각각 대회당 평균 3.44명과 2.31명이다. 대회 수가 적었던 과거에는 기권이 가물에 나는 콩 수준이었다. 기권 사유는 대다수가 감기 증상과 손목·무릎 같은 부위의 통증이다. 대회가 늘어남에 따라 체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4월 시즌 개막부터 쉴 틈 없이 대회가 이어져왔다. 대회가 있는 주간은 이동과 프로암, 연습 라운드 등으로 하루도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정당한 자기관리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다분히 계산적인 성격의 기권이다. 다음 대회 일정이나 개인 기록 관리 등을 의식해 특히 첫날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 스코어카드를 제출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지난달 악천후 속에 열린 KLPGA 투어의 한 대회에서는 첫날 총 출전자 108명 중 무려 12명이 기권했고 다른 대회에서는 최정상급 선수가 1라운드를 마친 뒤 손목 통증을 이유로 짐을 챙겨 떠났다. 대회 주최 측의 한 관계자는 “애써 대회를 마련한 보람이 반감했다. 프로 정신이 아쉽다”며 난감해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기권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프로의 기본자세인 동시에 팬들과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대기 선수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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