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극장을 콘서트장으로 만든 팬심

"따라 부르고 싶다" 관객 요청에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관 상영

영화 보다 발 구르고 환호·떼창

"팬덤, 제작·배급까지 영향 미쳐"

그래비티 등 옛 영화 재개봉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룹 결성기부터 주옥같은 명곡의 뒷이야기까지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일대기를 망라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창 상영 중이던 지난 6일 저녁 서울 용산CGV 제14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장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라디오 가가(Radio Ga Ga)’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 ‘해머 투 폴(Hammer to fall)’ 등 퀸의 대표곡들이 가사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 관객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1985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아돕기 콘서트로 7만 여명의 관중이 운집하고 전 세계 19억명이 시청한 전설적인 콘서트. 스크린X 상영관인 이곳에서 스크린부터 측면 벽까지 3면에 영상이 채워지자 관객들은 7만 관객의 일부가 된 듯 함께 눈물을 훔치며 노래했다. 흥을 참지 못한 두 여성 관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해머 투 폴’을 따라 부르며 ‘헤드뱅’ 퍼포먼스를 펼쳤고 다른 관객들도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함께 즐겼다. 보통의 상영관이라면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은 물론 소리를 내며 관람을 방해하는 관객에게 항의를 할 법도 하지만 이곳은 관크(관람방해행위를 이르는 신조어) 자유지대다. 관객의 ‘떼창’이 허용된 싱어롱(singalong·따라 부르기) 특별관이기 때문이다.

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 버전 상영을 이끌어낸 것은 관객들이었다.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 버전 상영을 이끌어낸 것은 관객들이었다.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7일 영화계에 따르면 영화관에 상륙한 팬덤문화가 관람 문화를 바꾸고 있다. 개봉 여드레째 9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 상영을 이끌어낸 것은 관객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발을 구르고 노래 부르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관객 요구에 직배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6일부터 멀티플렉스 3사에서 싱어롱 상영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9일까지 CGV는 상영관 3면을 스크린으로 펼치는 스크린X,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음향 특화관인 돌비애트모스관과 MX관에서 매일 2회차 안팎으로 총 9곡의 가사 자막을 삽입한 싱어롱 버전을 선보인다. 이번 싱어롱 상영은 2014년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 이후 4년만이다.


팬들의 요구로 시작된 상영인 만큼 반응도 폭발적이다. 상영 첫날엔 대부분의 싱어롱 상영이 매진됐거나 겨우 5~6좌석만 남겼을 정도다. 보통 관객들이 기피하는 1열도 싱어롱 상영관에선 인기 좌석이다. 흥에 겨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거나 발을 구를 수 있고 콘서트 맨 앞줄에서 즐기는 기분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싱어롱 상영관에서 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본 직장인 조현정(36) 씨는 “세 번이나 봤지만 싱어롱 상영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마치 콘서트장에 다녀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CGV의 경우 2D 상영관 객석률은 28%지만, 스크린X 객석률은 4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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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작은 아니어도 소수의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한 영화들이 당초 예상보다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거나 장기 상영을 이어가는 경우도 최근엔 부쩍 늘었다. CGV 관계자는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의 주옥 같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스타 이즈 본’이나 아동학대 문제를 고발한 ‘미쓰백’ 같은 영화는 과거 기준으로는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상영이 일찌감치 종료될 법하지만 작지만 꾸준한 관객몰이로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케이스”라고 귀띔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9일 개봉 후 43만 관객을 모은 ‘스타 이즈 본’은 이달 들어 평균 6,300명 수준의 관객이 상영관을 찾지만 현재 상영 중인 스크린은 160개로 그 수가 적지 않다.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쓰백러’들의 입소문 마케팅으로 한때 개봉일(547개)보다 많은, 666개 스크린을 확보하기도 했다.

팬심은 옛 영화를 부활시키기도 한다. 올 들어 4DX 버전으로 상영된 ‘아바타’ ‘그래비티’ 지난달 극장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은 팬들의 요청이 잇따르면서 재개봉이 결정된 케이스. 멀티플렉스들은 홈페이지, 앱 등을 통해 팬들이 직접 옛날 영화의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할리우드산 영화에서 반복되는 오역 논란이나 옛 영화의 재개봉, 관람 문화 변화까지 최근 수년간 팬덤 문화가 공고해지면서 극장은 물론 제작·배급사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며 “마니아를 자처하며 관람 분위기나 편성·배급전략을 좌지우지하는 집단 관객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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