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 정부의 공약 첫 번째는 일자리 창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 업무지시는 일자리위원회의 설치, 취임 후 제시한 1호 정책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였다. 그런데 일자리 창출은 올 평균 월 10만명 이하로 바닥조차 보이지 않고 일자리위원회는 일회성 단기 일자리 창출에만 골몰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또한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일자리 세습’이라는 채용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주에 발표된 통계청의 비정규직 조사에서는 감소가 기대됐던 비정규직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오랫동안 감소 추이에 있던 비정규직의 비중이 다시 증가로 전환됐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경제나 노동시장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다면 정책의 결과가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는 차별을 없애고 모든 근로자에게 고용을 보장한다는 좋은 뜻이다. 그러나 이의 실현은 선언만으로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려면 정규직이 적정한 고용보호와 생산성에 부합하는 임금을 받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이 그러한가. 과도한 고용보호와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받는 집단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면 견뎌낼 기업은 없을 것이다.
요지는 일부 정규직은 지나치게 과대 보호되고 있다면 과소 보호되고 있는 대부분의 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전체 근로자의 10% 미만에 불과한 유(有)노조 대기업과 공공 부문 정규직은 과도한 고용보호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이미 누차 지적된 바 있다. 특히 이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에게 현 정부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으면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자 모두 적절한 수준의 고용보호와 임금 수준으로 수렴하게 해야 하는데 특정 집단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인정된다면 비정규직 제로의 달성은 불가능하다.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고용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정규직의 고용보호는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만의 고용보호 완화를 통해 시도한 경험들이 있다. 그러한 정책들은 모두 일자리 창출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소득 불평등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독일의 하르츠 개혁과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시장 개혁은 다른 면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전 정부에서 시도한 양대지침 마련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해고 요건의 정당성과 관련한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이들은 모두 기득권 세력과 특정 집단의 지나친 과보호 축소를 통해 균형을 추구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현 정부는 근로조건 개악과 쉬운 해고라 하는 노동계의 주장에 따라 양대지침을 즉각 폐지한 바 있다. 하지만 현행 노사정위원회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지난 정부의 양대지침 이상으로 특정 집단의 지나친 고용보호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대지침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통념을 일반화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고의 절차를 엄밀히 규정해, 해고를 기존보다 쉽게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성급한 폐지가 안타깝다.
현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지나친 이상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일자리와 비정규직 관련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한다면 마찬가지로 고용세습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노조에게도 동일한 사회적 책임을 논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해소 및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의 지나친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끈기 있게 지속돼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고 비정규직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