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이 과거 삼국동맹에 맞서는 연합국 간 외교적 전쟁터로 바뀌었다. 독일에 맞서 연합국을 구성했던 미국과 서유럽 정상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참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보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몰두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스트롱맨’으로 대표되며 ‘찰떡공조’를 과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충돌도 격화하는 모습이다.
100주년 기념식 참석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10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서로를 친구로 칭하면서도 논란이 된 유럽군 창설 문제에는 함구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친근감을 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히 화답하지 않았다”면서 현장 분위기가 브로맨스를 연출했던 이전 만남과는 달랐다고 보도했다. USA투데이도 “본회의에 앞서 긴장감이 흘렀다. 마크롱이 트럼프를 향해 웃으며 제스처를 취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성난 얼굴로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전부터 유럽군 창설 문제로 대립해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중국·러시아,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며 “우리가 진정한 유럽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모욕적”이라고 비난하며 “유럽은 먼저 미국이 엄청난 보조금을 내는 나토 분담비에서 공평한 몫을 치러야 한다”고 받아쳤다.
다만 두 정상은 비공개회담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유럽군의 나토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해 양측이 공감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나토 분담금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한다”면서 “이는 내가 유럽 독자군 창설을 제안한 것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악천후를 이유로 미군 전사자들이 묻힌 엔 마른 묘지 참배 일정과 함께 주요 정상이 참석하는 파리평화포럼에 불참하기로 것도 마크롱 대통령과의 갈등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