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파국 갈림길선 국민연금개혁] 기초연금만 인상땐 부담 1,400조..."더 내고 더 받는 정공법을"

두자릿수 인상 징크스 깨고 연금 사각지대 줄여야

정권·표심따라 흔들리지 않는 연금개혁원칙 명문화

지배구조 개혁, 기금 수익률·독립성 제고도 절실




“지금은 훨씬 장수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이 더 많이 받아가면 제도가 버텨낼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초 대구에서 열린 국민연금 대국민 토론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이 안은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가입자 모두가 내는 것보다 받아가는 게 더 많게 돼 있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6년 제도 설계 때는 근로자가 항상 많고 노인이 항상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며 “차분히 제도 개선을 위한 항구적인 방향을 찾아가자”고 했다.

한 달 뒤 박 장관은 20년 만의 보험료율 인상을 뼈대로 한 제도개편안 초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국민연금 개혁은 또다시 안갯속이다. 보험료 인상은 최소화하면서 소득대체율을 올리거나 기초연금만 올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전문가들은 모두 생산적인 개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기초연금만 40만원 인상’은 눈속임…“국민연금 탈퇴 유인할 것”=최근 청와대 안팎에서는 국민연금 대신 기초연금만 올리는 방안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은 피하면서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초연금도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 국민연금과 달리 기초연금은 세금이 재원이다. 현재 25~30만원인 기초연금의 내년도 예산은 11조5,000억원인데 40만원으로 일률 인상하면 2088년까지 전 국민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1,416조원으로 추계된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을 맡았던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초연금은 재정에서 부담하지만 국민연금은 보험료가 위주”라며 “받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주머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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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재정에 비해 노인빈곤 완화 효과도 부실하다. 기초연금이 첫 시행된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초연금을 확대했으나 노인빈곤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최저소득 노인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섣불리 기초연금을 강화하면 국민연금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보다 후한 기초연금이 앞으로 더 강화될 것 같다는 인상을 주면 가입자 입장에선 국민연금에서 탈퇴할 유인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20년째 묶인 9% 벽…‘두자릿수 징크스’ 깨야=정부가 기초연금 인상을 대신 고려하는 것은 20년째 9%에 묶여 있는 보험료율 인상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 경제성장 둔화가 엎치고 덮치면서 인상 시기를 늦출수록 나중에 더 많이 올려야 하는 부담만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지금 당장 급하게 올리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인상계획을 만들어둬야 제도의 안정성과 신뢰를 지킬 수 있다.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노후소득보장 범위도 넓혀줘야 한다. 자영업자·특수고용직 등이 많아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을 강화해도 혜택을 못 보는 국민이 54%에 이른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지원으로 변질된 ‘두루누리(저임금 가입자 보험료 지원)’ 사업을 정말 지원이 필요한 취약근로자 대상으로 개편·확대해야 한다”며 “취약계층을 국민연금에 끌어안아야 기초연금 재정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재정목표 등 연금개혁 원칙부터 정해야=
현재 국민연금법은 5년마다 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재정계산과 함께 제도개편을 포함한 종합운영계획을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노후소득보장제도는 다양하지만 제도개편 범위는 국민연금에 한정돼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 하나가 아니라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종합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복지부 혼자서는 사실상 불가하다. 김 교수는 “법적으로 범정부 차원의 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재정목표와 같은 큰 원칙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번에 제도발전위가 제시한 ‘적립배율 1배 유지’와 같은 재정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미달하면 취할 조치를 미리 만들어놓자는 것이다. 그러면 5년마다 온 사회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소득대체율만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일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미 하고 있는 관리 방식이다.

◇옥상옥 구조 여전…기금운용위 독립해야=기금운용 수익률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도 절실하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현재 논의에서 기금운용 수익률 얘기는 쏙 빠져있다”며 “보험료율 높이겠다고 하기 전에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부터 모색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달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사무국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산하 소위원회 3개가 있는 옥상옥 구조를 고칠 ‘핵심’ 방안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연금 선진국은 민간 전문가 집단이 투자를 전담하고 있다. 1997년 대대적인 개혁을 거친 캐나다국민연금투자기구(CPPIB)의 올해 상반기 국내외 주식투자 수익률은 11%로 국민연금의 10배가 넘는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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