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교사가 전국적으로 9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숙명여고 내신 문제 유출 사건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운데 서울·인천·광주 등 일선 교육청은 내신 비리 재발을 막기 위해 교사와 자녀를 같은 학교에 배정하지 않는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1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사는 전국고등학교 521곳의 900명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경기 지역이 고교 100곳, 교사 19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서울 54곳(교사 73명), 경남 52곳(교사 95명), 충남 48곳(교사 93명), 경북 47곳(교사 89명)이 이었다.
또 학교 분류에 따르면 사립고가 348곳으로 66.79%에 달하며 공립고 173곳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립 특목고 21곳과 자사고 17곳에서 68명이나 되는 교사가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전남의 한 자사고는 교사 7명이 자녀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경기 지역 한 사립고에서는 무려 교사 9명이 자녀 11명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교육부가 내신 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상피제를 도입하자는 방침을 전하자 각 시·도교육청도 비슷한 대책을 줄줄이 세웠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숙명여고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상피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공립학교 교사는 내년 3월 정기 인사 때 다른 학교로 이동하고, 사립학교 교사도 전보를 권고키로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시내 학교 20곳에 자녀와 함께 근무 중인 교사들을 내년 3월 1일 전보하고 사립고 교원도 법인 내 전보나 공·사립 순회 발령을 낼 방침이다. 자녀가 재학 중인 학교에 교사가 배치되지 않도록 중등 교육공무원 인사관리 규정도 개정한다. 인천시교육청도 2020년부터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인사규정을 개정하고, 그전까지는 자녀와 한 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들을 전보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상피제를 강제할 수 없는 사립학교와 학교 수가 매우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 이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지가 가장 큰 관건”이라며 “사립학교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상피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를 세심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입에서 내신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이상 상피제는 표면적인 대책일 뿐이며, 상피제가 교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2020학년도 대입에서는 전국 4년제 대학 모집인원의 77.3%가 내신 성적이 중요한 수시모집으로 선발된다. 대표적인 수시 전형 중 하나인 학생부교과나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정시와 달리 내신 비중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확실한 수능 시험으로 학생을 뽑도록 정시 모집 인원을 늘리자는 대안이 나온다. 전북도교육청은 상피제가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간다며 제도 도입에 반발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올해 8월 확대간부회의에서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학년에 있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며 “교육계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보다는 훨씬 더 강화된 자기규제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은순 전국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이에 “상피제가 교사나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게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신 비리 대책의 기본이라고 본다”며 “다만 상피제를 시작으로 다른 대안을 강구하고 지나치게 경쟁적인 입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