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中 정조준한 美, 도매금으로 넘기려는 中…그 사이에 낀 韓 반도체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서울경제DB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서울경제DB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급기야 중국 반도체를 정조준했다. 미 상무부가 지난 10월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에 반도체 장비·소재 수출을 막은 것이다. 푸젠진화의 새로운 칩 제조 능력이 자국의 군사 시스템용 칩 공급 업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푸젠진화는 내년부터 D램을 양산할 예정이었다. 지난 4월 통신장비업체 ZTE에 이어 푸젠진화가 미국의 두 번째 공격 대상으로 찍힌 셈이다.

미국의 견제에 속이 뒤틀렸기 때문일까. 지난 16일 중국 당국자는 ‘반독점법 시행 10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3사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진전이 있다”고 흘렸다. 우리로서는 미중 틈 바구니 속에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과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이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中 반도체 손보는 美=미국이 무역전쟁 총구를 D램 업체로 겨냥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중국은 푸젠진화를 비롯해 창장메모리, 허페이창신 등 3개 업체가 내년부터 D램 양산을 본격화한다는 목표였다. 2019년을 메모리반도체 생산 원년으로 삼으려 한 계획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실제 반도체 육성은 ‘중국 제조 2025’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지난 2015년 15%에 그치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올리는 게 뼈대인데, 미국의 이번 조치로 제동이 제대로 걸렸다. 시장의 관심은 푸젠진화의 대응으로 쏠리고 있다. 앞서 미국의 거래금지령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ZTE는 미 정부에 10억 달러의 벌금을 내는 등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하지만 푸젠진화는 ZTE와 달리 항전하는 양상이다. 마이크론의 제품 일부에 대해 중국 법원이 중국 내 판매 금지조치를 내린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런 식의 대응이 얼마나 지속 될 수 있을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국내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참에 중국의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트럼프 정부의 의지가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꼬리를 내려야 결국 이 싸움도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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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금으로 韓 넘기려는 中=우리의 불안은 반도체 분야 미중 분쟁의 불똥이 국내 업체로 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미중 간 공방전은 확전 양상이 뚜렷하다. 지난 7월 미 반도체 기업 퀄컴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를 포기하자, 미 사법부는 기술탈취 시도를 이유로 푸젠진화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와중에 다음달 1일에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난다. 정황상 양국 정상이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중국은 반독점 조사를 지렛대로 강온 양면 전략을 쓸 공산이 적지 않다. 메이저 반도체 3사가 마치 가격 담합을 모의한 듯한 뉘앙스의 중국 당국자 발언도 미국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도 쓸만한 카드가 있는 만큼 계속 당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애꿎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실제 중국이 반독점 칼날을 마이크론에 휘두르게 되면 삼성과 SK하이닉스도 악영향을 피해가기 어렵다. 재계의 한 임원은 “중국이 미국과 확전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마이크론과 푸젠진화 간 지적 재산권 침해 등을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어 사태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에 고개를 숙이더라도 한국 업체에 대한 몽니는 인력 빼가기 등의 형태로 계속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격차’로 승부수 띄우는 韓=현재 반도체 시장의 진입 장벽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는 도전조차 해볼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당장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만 10조원 가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연간 감가상각비 등을 감안하면 시장 진입과 동시에 상당한 규모의 이익을 내야 재투자 여력이 생긴다. 사실상 중국이 유일한 경쟁자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간 통상 분쟁은 우리 업체들에게 중국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버는 효과도 예상된다. 미중 갈등이 단기적으로 우리 업체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나쁘지 않은 환경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차세대 D램인 DDR5 개발에 성공하는 등 미래 D램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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