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문무일 검찰총장이 확정판결 29년 만에 대법원에 비상상고했다. 부랑인들을 강제노역에 종사시키고 가혹행위에 처하고도 무죄를 확정받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법원 판결이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검찰청은 20일 문 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 신청했다고 밝혔다. 비상상고는 이미 확정된 형사판결에 법률 위반 사항이 발견됐을 때 법원 판단을 파기할 수 있는 제도다.
검찰은 당시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410호 자체가 법률의 일체 위임을 받은 바 없는 훈령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훈령이 단속 대상으로 지목한 부랑인이라는 개념이 극히 모호한데다 수용자들의 신체자유와 거주이전자유를 침해했다고 봤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위헌인 내무부 훈령이 적법 유효하다며 박 원장의 특수감금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확정판결은 비상상고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북구에 운영된 일종의 수용시설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5년 부랑인을 강제수용시키기 위해 만든 내무부 훈령 410호를 근거로 설립됐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부랑인 단속에 대대적으로 나선 것도 시설 운영의 배경이 됐다.
형제복지원은 정부 지원을 최대한 타내기 위해 무고한 시민까지 잡아와 매년 3,500여명을 가둔 뒤 박 원장의 개인 목장과 운전교습소·울주작업장 등의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또 시설 안에서 구타·학대·성폭행이 빈발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2014년 기준으로 12년 동안 시설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된 공식 사망자 수만 551명에 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암매장되거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의 만행은 1987년 3월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박 원장을 특수감금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내무부 훈령에 따른 정당행위였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이유였다. 박 원장은 국가보조금 횡령 혐의만 인정받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산 뒤 2016년 6월 사망했다. 세간에서 잊혀졌던 이 사건은 2012년 5월 생존자인 한종선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서며 재조명을 받았다. 이에 대검찰청 개혁위원회와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추가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문 총장의 비상상고와 사과를 권고했다.
형사소송법 제446조에 따라 비상상고 사유가 인정되면 대법원은 원래 판결을 파기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 심리를 통해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박 원장이 받은 무죄 선고의 효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심이 증거 등을 부당하게 판단해 사실관계를 바로잡거나 법 자체가 위헌으로 판명됐을 때 진행하는 ‘재심’과 달리 비상상고는 판결이나 소송 절차에 위법이 발견됐을 때 이를 바로잡는 절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