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노동개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택했던 실사구시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 색채가 뚜렷했지만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나 기업 규제개혁 등과 관련해서는 지지층의 이탈을 감수하고도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지난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은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국의 손을 잡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시 북핵 갈등으로 미국 내에서 북한 선제공격론 등이 불거졌고 노 전 대통령에게는 미국을 설득할 레버리지가 절실했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연장선상에서 파병을 결심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시간을 벌었고 이라크전쟁이 소강 상태로 들어서자 ‘평화재건군’의 형태로 파병을 했다. 지지층의 비판보다는 한미동맹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역시 참여정부 ‘집토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월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나가야 한다”며 한미 FTA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예상대로 여당과 지지층의 항의는 거셌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미 FTA의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참모로서 노 전 대통령의 역경을 지켜본 당사자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진보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와 국가 경영에 대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는 최근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 흐름과 상당 부분 연결돼 있다.
‘파주 LCD 클러스터’ 건설은 노무현 정부가 기업 규제개혁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3년 2월 경기도와 파주시, LG필립스LCD는 파주 일대에 100억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의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공장을 세우는 투자양해각서를 맺었다. 그러나 규제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경기도는 수도권 규제에 따라 대기업 공장 신·증축이 힘들었고 경기 북부는 군사 지역이라 제약 조건도 많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파격적 규제완화라는 결단을 통해 파주를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로 변신시켰다. 이는 지금까지도 우리 수출을 지켜주는 먹거리가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역시 노무현 정부 때 결정된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다만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 행보보다는 여전히 신중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2기 경제팀 구성 역시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들로 청와대를 꾸리고 집권 초 국정기조를 강조하는 한편 정책의 유연성은 높이는 전략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우회전 깜빡이’를 경제 및 노동 문제 쪽에 집중하면서 지지층과의 갈등 전선을 크게 넓히지는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