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동남아와 동아시아 대회에서 이전과 달리 상위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의 성적을 거뒀고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국가 대표팀 감독은 보통 자신의 나라 출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국에도 인재가 많기 때문에 굳이 외국인 감독을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히딩크와 박항서 감독을 보면 자국의 감독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다가 외국인으로서 ‘기적’을 보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두 감독이 2002년 월드컵에서 감독과 코치였다는 인연도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당연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자국의 감독은 성공하지 못하는데 외국인 감독은 성공하는 것일까. 이것은 자국 감독의 실력이 형편없고 외국인 감독의 실력이 월등히 낫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이 원인을 찾으려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진나라가 통일을 이뤄낸 원동력을 살펴볼 만하다. 당시 진나라는 서쪽의 변방에 자리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나라였다. 어떻게 진나라는 제나라·초나라 등 전통의 강국을 물리치고 통일 제국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진나라는 후발주자로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국의 인재를 대상으로 구현령(求賢令)을 내렸다. 나중에 시황제의 통일을 도운 이사도 구현령의 소식에 동해서 발걸음을 진나라로 옮겼던 인물이다.
이사가 시황제를 도와 통일 대업을 추진할 때 예기치 않은 간첩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한나라는 이웃 진나라의 급격한 부상을 우려해 토목 분야의 전문가 정국(鄭國)을 진나라로 파견했다. 정국이 진나라에서 대규모 토목 사업을 일으켜 국가 재정을 파탄시키려는 의도였다. 시황제도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정국의 제안을 믿고 습지를 농토로 만드는 대규모 토목 사업을 추진했다. 이 국가사업이 추진되는 중에 정국이 한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간첩 혐의가 밝혀졌다. 이 일로 토목 사업은 중단되고 그간 진나라에 와있던 외국 출신의 학자·기술자 등 전문가는 모두 진나라를 떠나게 됐다. 시황제가 외국인 전문가를 추방한다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조치는 두 가지 이유로 철회됐다. 하나는 정국이 시황제를 설득했다. 그는 자신이 한나라의 간첩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대규모 토목 사업이 마무리되면 진나라가 통일 전쟁을 수행할 군량미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황제는 정국의 주장을 수용했는데 정국이 건설한 사업은 ‘정국거(鄭國渠)’ 이름으로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이사가 진나라를 떠나면서 시황제에게 축객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간축객령(諫逐客令)’의 글을 보내 설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이사는 당시 진나라가 거둔 성공은 자국의 인재보다도 외국의 인재가 실력을 발휘해 통일 대업을 추진하게 됐다는 주장을 역사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간첩 혐의를 지우지 못하는 시황제를 위해 이사는 태산이 왜 높은 산이 되고 강과 바다가 마르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지 그 이유를 제시했다.
“태산은 어떠한 흙을 사양하지 않아 우뚝 솟은 높이를 이루게 됐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냇물을 가리지 않아 깊은 수심을 이루게 됐다(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고능성기대·故能成其大,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고능취기심·故能就其深).”
태산과 하해는 사람이 아니므로 선택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사는 태산과 하해가 높이와 깊이를 자랑하게 된 이유로 포용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흙과 물을 두루 보듬을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높이와 깊이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히딩크와 박항서 감독도 기존에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를 발굴하고 또 발굴한 선수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자국 감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으리라. 자국 감독은 선수 선발과 운영에서 알게 모르게 경기 외적 측면에 영향을 받아 선수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