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올 3·4분기 홍콩에 ‘SK반도체투자회사(SK Semiconductor Investments Co.Ltd)’를 설립했다. 모회사는 SK홀딩스의 자회사인 ‘SK투자회사매니지먼트(SK Investment Management Co.Ltd)’로 지분 100%를 갖고 있다.
SK반도체투자회사는 SK㈜ 소속의 자회사로 운영된다. 하지만 SK그룹의 미래 핵심 성장 산업으로 반도체를 육성하고 있는 만큼 그룹 최고 협의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의 큰 그림과 궤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앞으로 SK반도체투자회사를 해외 반도체 관련 기업과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주도하는 법인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현재 초기 자본금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투자가치가 높은 매물이 시장에 나올 경우 SK하이닉스(000660) 등 SK그룹사가 증자를 통해 투자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반도체투자회사의 모태가 ‘SK차이나컴퍼니(SK China Company, Ltd)’라는 점에서 중국 내 반도체 시장 투자를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SK차이나컴퍼니는 자회사 SK인베스트매니지먼트의 지분 상당수를 지난해 현물배당 방식으로 SK홀딩스에 넘겼다. SK차이나컴퍼니는 7월 중국 투자사인 레전드캐피털이 조성한 6억달러 규모의 펀드에 주요 출자자(LP)로 참여하는 등 중국 현지에서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SK반도체투자회사 또한 향후 중국 시장에서 활발한 투자 행보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SK반도체투자회사가 홍콩에 설립되는 점도 향후 중국 반도체 시장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은 중국 현지 대비 법인 설립 기간이 짧고 법인세와 부가세가 낮아 투자 시 유리하다. 또 홍콩은 영문과 중문을 혼용해 중국 투자 시 필요한 공증이 수월하고 노동이나 외환 리스크 등도 중국보다 안정적인 것이 장점이다. 혹여 법인 폐쇄 시에도 자본금 회수가 중국보다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SK차이나컴퍼니 또한 법인 소재지가 홍콩이다.
이번 SK반도체투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SK그룹의 고민도 엿볼 수 있다.
반도체는 SK그룹의 올해 영업이익 가운데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메모리 업황에 따라 그룹 전체가 휘청일 수 있는 구조다. 포스트 반도체로 육성 중인 바이오의 경우 아직 노하우가 부족하며 전기차 배터리 또한 후발주자인데다 사업구조상 향후 몇 년간 투자에만 집중해야 한다. SK그룹의 포스트 반도체 후보군이 모두 제 몫을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SK그룹 또한 지난해 낸드 플래시 부문 세계 2위 업체인 ‘도시바 반도체’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반도체 분야 덩치 키우기를 통한 정면돌파에 나서고 있다. 다만 향후 확보 가능한 도시바 관련 지분이 15%로 제한돼 있어 도시바 반도체 투자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가까운 ‘수(手)’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 반도체투자회사를 세운 것은 보다 공격적인 투자전략의 일환으로 읽힌다. 홍콩은 중국을 비롯해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한다. 하지만 낸드플래시나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는 아직 부족하다. 실제 올해 2·4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플래시 메모리 세계 시장 점유율은 12.1%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커지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도 SK하이닉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결국 이번 홍콩 반도체투자회사 설립은 D램 이외의 낸드플래시나 비메모리 등 반도체 투자를 통해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그룹 측은 SK반도체투자회사의 향후 투자계획 등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SK그룹 관계자는 “SK반도체투자회사는 사명에 ‘반도체’가 들어간 만큼 반도체 관련 산업에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분야 직접투자나 조인트 벤처에 대한 투자 등이 가능하지만 아직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