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취업시장실패가 낳은 '公試 쏠림'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박현욱 기자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공시생(공무원시험 수험생) 연령에는 하한선이 없는 듯 보인다. 공시(公試)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을 일컫는 ‘공딩족’까지 학원가에서 마주칠 수 있으니 조만간 공시학원에 ‘중딩반’ ‘초딩반’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공딩족의 꿈은 물론 공무원이고 그토록 일찍 공시 대열에 합류한 것은 ‘대학졸업장이 있어도 안정된 직장을 잡기 어렵다’는 현실을 터득한 탓이다.

멈추지 않는 공시 열풍에 기름을 부은 것은 사실 현 정부다. 청년실업을 줄이겠다며 내건 공무원 채용 확대 방침이 오히려 취업전사들을 자극했다. 직장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병원에 있어야 할 간호사가 보건교사를 꿈꾸며 학원가로 달려간다. 훗날 정권이 바뀌면 공무원 채용 인원이 줄 테니 이 기회에 무리해서라도 도전하고 기필코 합격하겠다는 필사의 의지 때문이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공무원 채용 확대가 오히려 청년실업자를 양산하고 장기실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직장까지 그만두는 ‘퇴준생(퇴직준비생)’ 행렬의 원인을 공무원 채용 확대로만 돌릴 수는 없다. 세계 경제가 꺾여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을 줄이면 결국 일자리 해결을 위해 문을 두드릴 곳은 공공 부문밖에 없다. 무분별한 공무원 늘리기가 미래세대에 부담만 준다는 성토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민간 부문의 일자리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서도 당장 역대급 일자리 대란을 해결할 묘책은 나오지 않을뿐더러 과거 호황기에도 낙수효과를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청년들에게 별다른 기대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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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불안해지면 청년들은 더욱 공시에 매달릴 공산이 크다. 갖가지 채용비리를 목격한 청년들의 눈에 공시가 비교적 공정한 경쟁으로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공정성의 자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시족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결국 낙방자·실업자 수도 증가한다. 지금은 공시가 청년실업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을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결국 수험생들의 공정성 요구를 현재의 필기시험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철저한 블라인드 면접을 결합해 현장경험을 중시하는 채용도 하나의 방안이다. 현재의 국가공무원 경력경쟁 채용 범위를 확대하고 현장경험의 비중도 높이면 청년들이 다른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실직기간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현장경험 채용 방식이 자칫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청년들을 또 다른 스펙 경쟁으로 내몬다는 비판이 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은 필요하다.

공무원 채용 방식의 변화가 수험생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지만 지금의 공개경쟁 채용으로도 절차적 공정성은 충분히 확보된다. 여기에 현장업무능력 평가 방식을 더하면 극단적 공무원 열풍 현상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취업시장은 이미 시장실패를 경험했다. 정부실패가 될까 두려워 공시 쏠림 현상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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