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렌털 기업인 코웨이(021240)가 얼음정수기에서 니켈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비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 니켈 음용의 유해성을 두고 코웨이와 소비자들이 2년간 논쟁을 지속한 끝에 소비자들의 피해가 인정된 첫 판결이다.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6부(김동진 부장판사)는 강모씨 등 얼음정수기 소비자 298명이 코웨이를 상대로 낸 ‘니켈 음용 피해’ 관련 손해배상청구 1심 소송에서 “코웨이는 원고 중 정수기 계약 당사자인 78명에게 100만원씩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코웨이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제기된 사건은 이번 판결을 포함해 총 3건이다. 소송 원고 수를 다 합치면 계약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포함해 2,304명에 이른다. 가구당 3명의 가족 구성원을 가정해 계산해도 약 800가구에 육박한다. 선고가 예정된 남은 2건도 사안이 같아 이번 판결과 비슷한 수준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선고된 배상액을 적용할 경우 코웨이는 가구당 계약당사자 1명에게 100만원씩 최소 총 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시중에 판매된 니켈 검출 정수기가 약 8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전체 피해자의 1%에 불과한 액수다. 소비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지면 코웨이가 배상해야 하는 금액은 최대 800억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단소송 제도’의 필요성이 또다시 제기된다. 집단소송은 피해자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그 판결의 효력이 미쳐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집단소송 대상이 증권 분야로 한정돼 있어서 제조물책임 등의 분야에서는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에 참가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BMW 자동차 화재 사고에 이어 최근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장애 피해 등 다수의 피해자가 걸린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집단소송제 도입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9일 부처 전략회의에서 집단소송법 적용 분야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법원이 코웨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근거는 계약서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고지의무 위반’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민법 750조에 따른 불법행위 또는 민법 390조의 채무불이행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데 코웨이의 행위는 후자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코웨이 측은 이미 2015년에 자사 얼음정수기의 구조물에서 니켈이 박리돼 음용수에 섞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며 “소비자기본법에 규정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타사 정수기도 니켈 도금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코웨이 제품만의 하자가 아니라는 코웨이 측의 주장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른 정수기에 니켈 도금이 사용된다 해도 음용수에 박리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소비자들이 주장한 ‘니켈 음용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준치 이상의 니켈 성분이 함유된 물을 장기간 마실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원고들에게 나타난 피부 알레르기, 가려움증 등의 증상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니켈 함유 음용수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법원은 원고 중 계약 당사자에 한해서만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했다. 계약상 의무에 의한 손해배상이므로 계약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은 권리 침해를 주장할 법적 지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고 직후 소비자 측 변호인인 남희웅 변호사는 “니켈의 유해성만 인정되고 직접적인 피해 사실은 입증되지 못했다”며 “언론 보도 이후 코웨이 측이 즉시 정수기를 수거해가는 바람에 해당 정수기로 인한 증상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피해자들과 의견을 나눈 후 항소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