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이후 원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전체의 절반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TF는 변동성이 낮고 개별종목 대비 분산효과가 높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기가 높았는데 특정 업종에 편중된 ETF는 업황이 악화할 때 수익률도 곤두박질치는 등 변동성에 취약한 구조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금융정보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으로 운용순자산 10억원 이상인 국내 ETF 414개 중 186개가 설정 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ETF의 45%가 원금을 까먹고 있는 것이다.
주로 특정 업종과 관련된 종목들만 골라 담은 ETF들의 손해가 컸다. 지난 2008년 5월 설정된 ‘삼성KODEX기계장비 ETF’가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현대중공업지주·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에 투자한 이 상품은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침체 여파로 지난달 말 기준 -81% 손실을 냈다. 기아차·현대차·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관련 종목들을 집중적으로 담은 ‘미래에셋TIGER현대차그룹+ETF’는 자동차 산업의 부진으로 인해 수익률이 -46%로 추락했다. 건설업종도 예외는 아니다. 건설 경기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악일 정도로 악화되면서 ‘삼성KODEX건설ETF’는 -37% 수익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리스크 관리에 장점을 지닌 ETF지만 포트폴리오의 자산배분이 잘 되지 못하면 변동성에 취약한 구조라는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펀드매니저가 직접 운용하는 액티브 펀드는 수익률이 나빠질 때 적극적으로 종목을 교체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서지만 ETF는 사람의 개입 없이 초기 보유 종목 그대로 지수만 따라가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업황이 좋을 때 이를 추종하는 ETF 상품들이 우후죽순 나오는 경향이 있다”면서 “과거 조선업이나 건설업 관련 ETF들이 대표적인 사례로 초호황 시기에 투자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경제의 흐름을 잘 살피며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변동성이 높은 개별 업종 ETF는 방망이를 짧게 쥐고 장기 투자를 할 때는 투자처가 골고루 분산된 ETF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정섭 KB자산운용 멀티솔루션본부 이사는 “ETF는 거래소에서 지정한 지수 내 종목의 비중을 그대로 투자하는 상품”이라며 “특정 섹터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에 동의한다면 장기투자가 가능하나 그렇지 않은 일반 투자자라면 포트폴리오의 자산배분이 잘 된 상품에 장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별 업종 대신 지수에 투자한 ETF들은 장기 수익률이 탁월했다.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삼성KODEX200 ETF’와 ‘키움KOSEF200 ETF’는 2002년 10월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이 각각 368.89%, 349.51%로 전체 ETF 1·2위를 달리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셀트리온·POSCO·KB금융 등 다양한 종목을 고루 담은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하는 ‘미래에셋TIGER나스닥100 ETF’와 ‘한국투자KINDEX삼성그룹주SW ETF’ 등도 설정 후 수익률이 100~200%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