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처럼 살았던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피해자들이 뒤늦게 서로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피해보상 및 주거지원대책 논의에서까지 ‘유령’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5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국일고시원 화재 피해자 중 일부가 경찰·소방·동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청구에 나섰다. 피해자나 가족의 연락처라도 알려달라는 취지에서다. 피해 유가족 이모씨는 “사고 후 현재까지 건물주·고시원장에게서 연락받은 게 없다”면서 “경찰, 구청 직원에게 물어봐도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해 답답하다”고 언급했다.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불이 난 지 한 달이 다 되지만 피해자 측과 건물주·고시원장 간 보상 논의는 시작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자의 대부분이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서로 친분도 없고 대책기구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통상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성인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좁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주방에서 밥을 먹을 때도 통상 인사 한번 나누지 않고 지낸다. 법률대리인을 접촉해 건물주·고시원장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도 생존자 6명에 그쳤다. 고시원에 거주했던 베트남·중국에서 온 외국인 중 일부는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도시연구소·빈민사회연대 등을 중심으로 오는 27일 국일고시원 화재 사망자를 추모하는 49재가 열린다. 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화재 후 시민 분향소도 마련하지 못했고 피해자 중에는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른 사람도 있다”면서 “고시원 화재 생존자들도 요구해 49재 추모제를 지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사망자 7명 중 4명이 빈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날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는 종로의 고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생존자들을 만나 피해자 법률지원에 나섰다. 오세범 특위 위원장은 “생존자들은 소방 당국의 초기 부실대응을 지적하는데 이 점은 사망자 유족 측이 청구해야 신속하게 재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