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두 번의 화재, 두 곳의 급소

송영규 논설위원

고시원 불길은 안전망 부재 증명

통신구 화재선 우울한 미래 엿봐

끊임없는 성장·발전 중요하지만

가끔 뒤돌아 공동체 볼줄 알아야

송영규 위원



큰불이 두 번 났다. 지상에서 한 번, 지하에서 또 한 번. 많은 게 달랐다. 지상에서의 화재는 사망자 7명 포함 18명의 사상자를 초래했고 지하 화재는 인명 피해는 전혀 없이 땅속에 묻혀 있던 케이블만 태웠다. 사회적 관심도도 판이하다. 고시원 화재는 하루 이틀 반짝 관심을 끌고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주변 지역을 구석기시대로 되돌려놓는 통신 대란을 이끌며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지역도 성격도 전혀 다른 화재들이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개의 불길은 과거부터 가졌던, 그리고 생길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급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종로 고시원 화재에서는 성장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우리 경제의 뒤안길 모습이 보인다. 고시원은 이제 고시생들이 묵는 곳이 아니다. 사회 시스템에서 밀려나 벼랑으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이 노숙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찾는 거처다. 손을 뻗으면 양쪽 벽이 닿을 듯한 ‘벌집’에서 1만~2만원씩 내고 하루 쪽잠을 청하는 인생들. 이번 화재의 희생자도 대부분 40~70대 일용직 노동자들, 또는 독거 노인 같은 취약 계층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바닥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남들처럼 번듯한 직업과 단란했던 가정을 가졌다. 1997년과 2008년 두 번의 경제 위기와 정보기술(IT)의 비약적 발전은 한국 경제의 변신을 이끌었지만 특별한 기술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악몽이 됐고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를 달리는 한국 사회의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천형이나 다름없다. 살았을 때 가족으로부터 받는 버림은 사후에도 계속된다. 일가친척이 없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 ‘무연고 사망자’. 엄격한 의미에서 무연고가 아니다. 아직도 무연고 사망자의 10명 중 9명은 가족이 존재한다. 단지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당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 여덟 번째 ‘빈곤 탈출·주거 문제 해결’의 최우선 대상이 겪는 오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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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와 안전망의 부재가 고시원 화재를 통해 투영됐다면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미래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을 미리 엿보게 한다. 스마트폰 먹통으로 불편을 겪고 시스템 다운으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는 것은 단편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무한대의 정보를 처리하는 세상이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올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류는 극도의 풍요로움과 최고의 편리함, 최강의 의료혜택을 구가할 것이다. 버튼 하나로 의식주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 이상이 아닌 현실로 구현되는 시대다.

하지만 인류의 풍요가 곧 개인의 풍족을 의미할까. 노동과 분리된 자본이 스스로 진화하면서 창조한 부가 사회의 풍요를 이끌어내리라 확신하기 힘들다. 사회 전체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밝음과 어둠, 있음과 없음의 경계선이 더 또렷해질지 모를 일이다. 통신구 화재가 보여준 미래는 어쩌면 고시원 화재가 고발한 오늘과 맞닿아 있을지 모르겠다.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우주로 향해 있던 망원경을 돌려 찍은 지구를 표현한 모습이다. 눈앞 가까이에서는 아름답고 푸르게 빛나는 ‘블루 마블’이 멀리서 바라보면 드넓은 우주에 부유하는 하나의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사진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는 이 우주의 작은 티끌 속에서도 지극히 한정된 곳에서 살고 있다.

미래로 나가는 것,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가끔은 뒤를 돌아보고 낙오된 것은 없는지 살펴볼 때도 있어야 한다.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언급처럼 우리는 “모든 기쁨과 고통, 수없이 많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정책들이 저기, 저 햇빛 속을 떠도는 작은 티끌 위에서” 함께 나누는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두 번의 화재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한 경고일지도 모른다./skong@sedaily.com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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