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돈 내는 투자자가 갑?...아직 먼 얘기

임세원 시그널팀기자




“우리 회장님을 그런 투자업계 사람처럼 다룬 것이 불쾌합니다”

한 대기업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그가 지칭한 ‘회장님’은 사회 초년병 시절 투자은행(IB)에 재직했고 대학 동문인 투자업계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그런 투자업계’라는 곳은 투자기업 규모로만 따지면 재계 19위로 아시아 지역 전역의 대기업에 투자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회장님이 속한 대기업 그룹은 활발한 국내외 투자를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회장님을 투자업계 인사들과 배치한 기사를 본 대기업 측의 반응은 ‘같이 엮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었다.

최근 조 단위를 넘는 자금을 동원해 기업을 인수하거나 오너 일가의 회사를 사들이는 사모펀드가 나오면서 한때 ‘먹튀 세력’으로 불린 사모펀드의 위상은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에서는 대기업이 갑이고 사모펀드를 구성하는 출자자와 운용사는 을에 가까운 장면이 보인다.


가까운 사례는 CJ그룹의 미국 냉동식품 회사 쉬완스 인수다. 함께 투자하기로 한 사모펀드는 막판에 투자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들은 CJ그룹이 중간에 조건을 변경하면서 함께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CJ그룹은 무리한 조건을 요구한 것은 사모펀드 쪽이라고 반박했다.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었던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조건을 변경한 쪽은 CJ그룹이 맞다. 그러나 결코 합의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그래도 대기업인데 운용사가 맞춰주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공방은 삼성그룹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삼성물산은 보유했던 한화종합화학 소수지분 매각을 시도했다. 삼성물산은 매각 과정 막판에 과거 한화와 맺은 주주 간 계약을 새 인수자에게 이전해 줄 수 없다고 밝혔고 매각은 결국 무산됐다. 당시 매각에 관여한 관계자는 “삼성이 매각 초기에 주주 간 계약을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구속력이 있는 약속은 아니었다. 인수후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으나 따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에 거래를 하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투자업계는 대기업이 투자자와 신뢰를 무시한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밝혔다. 이들이 투자하는 돈은 개인이 아니라 대부분 국민연금이나 공제회 등 다수 국민의 돈이다.

기업을 오랫동안 책임지는 기업가와 단기간 투자했다 빠져나가는 투자자 간 위상이 다르다는 반박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해외의 대규모 사모펀드 운용사는 이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에 책임감을 갖는 주체로 성장했다. 전 세계 기업에 투자하고 잘 이끌어나가기 위한 인재와 전략을 고민한다.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한다. 그 과실은 기업의 일부 오너나 펀드메니저 뿐 아니라 펀드 가입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내 사모펀드도 최근 들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내고 함께 성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가치를 키우고 그 열매를 고루 나누는 선순환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why@sedaily.com

임세원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