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들이 구속 위기를 면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의 자료 요청에도 소극적이었던 법원은 또다시 ‘방탄 법원’이라는 비판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선에서 꼬리자르기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7일 새벽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임 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박 전 대법관의 관여 범위나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을 인정하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다수의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거와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명재권 영장전담부장판사도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명 판사는 “고 전 대법관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진 점과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범죄사실에 대한 공모 여부가 명확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지만, 이날 영장기각으로 법원을 향한 ‘제식구감싸기’ 비판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은 인물들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비율이 높은 탓이다.
구속영장 기각이 결정된 직후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 규명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