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제도적 장치의 부재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청을 들었다며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50대가 과거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7일 오전 2시께 주택가에서 흉기로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A씨를 현장에서 검거해 조사 중이다. 경찰 조사에서 알코올 중독성 치매를 앓던 A씨는 ‘환청을 들었다’며 아내를 찔렀다고 진술했다.
A씨는 과거에도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는 2015년 딸을 폭행·협박했고 2017년에는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피해자들이 처벌 의사를 철회해 A씨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특히 첫 가정폭력 신고였던 2015년 당시에는 딸이 아버지 A씨를 신고했으나 어머니 B씨가 ‘아버지가 처벌받지 않게 해달라’며 딸을 설득했다. 폭행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A씨를 처벌하지 말라며 딸을 설득했던 아내 B씨가 결국 A씨의 흉기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을 지낸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사건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재 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는 처벌을 원한다고 했을 때 더 큰 학대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으로 표면적으로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현행 법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관련 전문가가 개입해 피해자의 독립 가능성, 가해자에 대한 의존성 등을 살펴보고 피해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것인지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은 피해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한 사례다. 이 사건은 ‘아버지를 사형에 처해달라’는 가정폭력 피해자 딸의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시 피해자는 2차례나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받아냈는데도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결국 가해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사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당국에는 체포 권한이 없다는 것이 맹점으로 지적됐다.
피해자 딸의 청와대 청원이 한 달 만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끌어내 답변 요건을 충족하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와대 SNS프로그램에서 관련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진 장관은 “지금까지 가정폭력은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급적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게 맞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동안 실제로 피해자 보호조치가 많이 부족했다. 피해자가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 신고도 못 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피해자 자립 지원 대책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정 인턴기자 jnghnji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