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기 드라마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rn)’은 기술로 죽음을 피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의 의식을 디지털 저장소에 담아 원하는 육체에 넣으면 죽은 후에도 새로운 육체와 새로운 인생을 갖게 된다. 드라마 속 한 인물은 몇 번의 죽음과 새로운 인생을 겪고 나서 영원한 죽음을 원하게 된다. 몇 번의 생을 거쳤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그녀의 손녀딸에게 ‘죽음은 인생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담담히 조언하고 손녀는 눈물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죽음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질주하는 한국사회로서는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나의 노후, 그리고 나의 죽음은 어떠한 모습이 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인생을 품위 있는 죽음으로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본인보다는 남겨진 가족이나 지인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가족을 배려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가령 본인이 긴 시간 병고에 시달릴 때 옆을 지켜준 이의 생활의 품위를, 본인이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가족들이 겪을 황망한 슬픔이 아닌 애도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준비해주는 일이다. 죽음의 준비는 연령대에 맞게 하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먼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본다. 주제를 나눠 적어보되 인간관계도 포함해 본다. 여기에는 부모님과 여행가기, 일주일에 한번 자녀 격려하기, 어머니에게 하루 한번 감사하다고 말하기, 서먹했던 동료와 술 한잔 하기 등을 적어보면 어떨까. 인생이란 촘촘한 인간관계 그 자체이다. 적어내려 갈수록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태도와 마음 씀씀이를 돌아보게 된다.
둘째, 노후 자금 중 간병비와 병원비를 별도로 준비한다. 65세 노인이 사망 때까지 쓰는 평균 의료비는 8,100만원이다. 간병비는 별도다. 질병과 기간에 따라 의료·간병비는 가족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셋째, 유언장을 작성해 죽음 이후 재산상의 혼란이 없도록 한다. 최근에는 민법상의 유언장을 대신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사에 재산을 위탁해 생전에는 수익을 추구하고 사후에는 정해둔 수익자에게 상속의 집행 및 신탁의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상속관련분쟁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의 유언장 작성 비율은 3~5%로 일본(10%)보다 낮다.
넷째, 사전의료의향서와 장기기증신청서를 본인이 직접 작성해두면 좋다. 올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된 후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는 2만명을 넘어섰다. 의향서를 작성해두거나 생전에 의사를 표시해놓지 않으면 가족들은 의미 없는 연명의료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남은 가족들이 연명의료와 장기기증에 대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는 더욱 힘들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했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을 전제로 한다. 좋은 삶은 나와 내 주변인이 행복한 것이다. 품위 있는 나의 마지막과 그 끝을 함께해줄 가족에 대한 배려를 위해 웰다잉에 대해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