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벤처시장이 흔들리며 코스닥시장이 붕괴하는 역기능이 일어난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살아남은, ‘스케일업’이 필요한 기업을 별도로 지원하는 정책을 중요하게 여겼죠. 일자리 창출과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스케일업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정책을 펼친 겁니다.”
성명기(사진) 이노비즈협회 회장은 13일 경기도 판교 이노밸리 소재 협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노무현 정부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노비즈기업)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스타트업과 스케일업을 분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성 회장의 발언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지나치게 초기 창업지원에 집중되며 정작 몸집을 불려야 하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필요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성 회장은 2013~2015년에 이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이노비즈협회 수장을 맡고 있다. 이노비즈협회에는 연 매출 평균 150억원대의 기술 강소기업들이 모여 있다.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넘겼으면서도 연 매출 1,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 단계로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노비즈기업은 스케일업의 정책 수요가 가장 큰 단체로 손꼽힌다.
현재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벤처기업 육성의 주관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년 창업벤처 분야에 총 8,855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창업기반자금에는 총 2조1,300억원이 들어가 중기부 전체 예산액 10조1,723억원의 20.9%를 할당한다. 성 회장은 “중국이나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스케일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며 “정상궤도에 들어선 기업이 혼자 스케일업을 하려면 자금 동원이나 마케팅에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벤처기업, 더 나아가 유니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실탄이 필요한 만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스케일업 기업은 일자리나 시장 창출 여력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보다 훨씬 높은 만큼 밀착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성 회장은 “지난해 대기업에서는 약 4만5,000여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이노비즈기업계에서는 총 3만6,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졌다”며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예산을 많이 투입하고 있는데 이를 스케일업에 투자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스케일업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소기업형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미 스마트팩토리 구축 역량이 마련된 국내 중소기업이 많은 만큼 이들을 플랫폼으로 묶으면 중소기업끼리 자발적으로 공장설비를 첨단화해 제조혁신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성 회장은 “우리나라 산업 구조상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전속거래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국내 중소기업 주도로 자체 제조역량도 높이고 거래도 다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현재의 스마트팩토리 지원사업이 현금 보조에 의존하는 만큼 이의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 회장은 “정부는 기업 하나당 스마트팩토리 지원 자금으로 5,000만원~1억원씩 뿌린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포장라인 하나를 자동화하는 데만 10억~20억원이 든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오히려 고도화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플랫폼을 기반으로 중소기업을 그루핑하는 등 기업 혼자 할 수 없는 부분에 정부의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남=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