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중학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A 씨는 그동안 야근 후 건강 관리를 위해 따릉이를 타고 귀가하는 것을 즐겼지만 최근에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있다. 따릉이를 대여하기 위해 앱을 실행하면 도보로 20분 거리 안에 있는 정류소는 모두 텅텅 빈 데다가 운이 좋아 자전거를 찾아도 고장이 나 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청계천을 따라 따릉이를 타며 스트레스를 날렸지만 옛날의 일이 돼버렸다.
퇴근 시간 이후 밤마다 도심에 따릉이가 없는 ‘따릉이 공동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가 밀집한 도심 지역에서 직장인들이 따릉이를 빌려 외곽으로 향하는 탓에 동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에서 따릉이를 도심으로 옮겨야 하지만 시설이 태부족하다. 서울경제신문은 13일 밤 따릉이 배부차량에 동승해 그 이유를 알아봤다.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설공단 소속 정승만 반장을 만난 시간은 저녁 7시 5분이었다. 35대를 주차할 수 있는 정류소에 남아있는 따릉이는 고작 4대. 그마저도 채웠던 것이지 방금까지는 한 대도 없었다고 했다. 총 30대의 따릉이를 실을 수 있는 운반 차량은 시청 정류장을 마지막으로 텅 비어버렸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따릉이 이용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일 중 따릉이 대여 빈도가 가장 높은 시간은 저녁 6~9시로 전체 대비 24.9%를 차지했다. 대여 건수가 많은 상위 20개 대여소 중에는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합정역 7번 출구 앞 △여의도역 4번 출구 옆 △공덕역 8번 출구 등 업무지구가 많았다. 결국 퇴근 시간 직장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은 셈이다. 정 반장은 “도심에 있는 정류장은 텅 비어있어도 중랑구·은평구 등의 정류장은 3~4대씩 연결 거치 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보도가 좁아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비어있는 정류장에 자전거를 채우기 위해 종로4가에 있는 따릉이 보관소로 7시 5분 출발했다. 퇴근 시간이어서 가는 길인 세종대로와 종로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20분 가까운 시간이 걸려서야 보관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무수행 차량임에도 길을 양보해주는 차는 없었다. 따릉이 배송 차량 앞을 끼어드는 얌체족도 많다고 정 반장은 전했다. 그 시간 동안 따릉이 배송은 발이 잡힐 수밖에 없다.
정 반장은 따릉이 보관소에 남은 따릉이 30대를 차량에 실었다. 종로에 남은 마지막 따릉이였던 셈이다. 정 반장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며 양손에 따릉이를 한 대씩 잡고 움직였다. 기자가 실제로 해보니 따릉이 바퀴가 가운데로 몰리는 탓에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정 반장은 ‘드르륵’ 소리도 내지 않고 매끄럽게 따릉이 30대를 차량에 실었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빠르게 따릉이를 실었어도 금세 동이 나버렸다. 따릉이 30대는 안국역·중앙고등학교 등 몇 군데 정류장을 돌았더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따릉이가 한 대도 없는 정류장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종로 보관소는 텅 비었으니 다른 보관소로 가야 했다. 정 반장은 “수리 센터가 붙어있는 곳이 좋겠다”며 상암으로 향했다. 시청에서 상암까지는 약 40분 거리다.
현재 따릉이 보관소는 총 10곳에 불과하다. 수리와 보관이 가능한 센터는 총 3곳으로 이 중 한 곳인 동대문(훈련원) 센터는 지난 10월 17일에야 문을 열었다. 센터·보관소가 아닌 외곽의 정류장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은평구 같은 경우 따릉이 보관소가 없어 한 정류장에 따릉이 용적률이 400%가 넘는 경우가 잦다. 정 반장은 “근무하는 8시간 중 한두 번은 은평·중랑구 등 외곽의 정류소로 나간다”고 말했다. 외곽 지역에서 도심 지역으로 따릉이를 실어 오면 왕복 2시간은 걸린다. 따릉이 정비 및 보관·배부 시스템을 체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정지권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성동2)은 “현재 따릉이는 포화상태”라며 “따릉이의 움직임을 체계화하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한 후 양적 확대를 도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암에서 다시 따릉이 30대를 실어 종로5가로 오는 길, 정 반장에게 장거리 운행을 하다 보면 퇴근 시간을 넘기지 않느냐고 물었다. 정 반장의 답은 “그렇다”였다. 35분이 걸려 정 반장과 작별인사를 나눈 시간은 저녁 9시 30분이었다. 정 반장은 기사와 웃으며 인사를 나눈 후 묵묵히 다시 실어온 따릉이를 정류장에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