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우리나라에 정보기술(IT) 붐이 일던 시절 나는 어떤 분으로부터 상장 전이었던 네이버 주식 2,000만원어치를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네이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시 내 눈에 유망해 보였던 회사들은 아이러브스쿨·한미르 등이었다. 아이러브스쿨은 잘됐으면 지금의 페이스북이 됐을 것이고 한미르는 잘됐다면 지금의 구글맵을 능가했을 법한 지도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론칭하고 있었다. 이들에 비해 네이버가 딱히 나아 보이는 점이 없었다.
“왜 네이버인가요” 라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사람들이 훌륭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나 아이러브스쿨·한미르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네이버는 시가총액 10위권의 대기업이 됐다. 그때 네이버의 주식을 샀더라면 나는 지금쯤 갑부가 됐을 것이다. 아마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느라고 마음고생을 하는 대신 부를 즐기는 우아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네이버는 위대한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의 사업 모델이 훌륭했겠지만 더 위대한 점은 나에게 주식 인수를 제안했던 이의 말처럼 사람들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는 네이버 출신들이 제2의 창업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카카오톡·배달의민족·민앤지 같은 회사들은 알고 보면 네이버 출신들이 창업한 것이다.
그들은 원래부터 창업자 감이었을까. 네이버는 미래의 창업자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영입을 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네이버에서 일하면서 창업가로 성장했을 것이다.
벤처 회사는 성장하는 속도가 가파르다. 따라서 직원들의 성장 속도보다 회사의 성장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항상 배워보지 않은 일, 해보지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된다. 항상 능숙하게 일처리를 하기보다는 경험해보지 않아 서툰 일을 겨우겨우 땜빵하면서 일처리를 하게 된다. 이는 직원이건 사장이건 마찬가지다. 리더십이건 문제 해결 능력이건 내가 준비된 정도보다 버거운 수준의 일이나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벤처는 대기업과 달리 가르쳐주는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 항상 자신이 전문성이나 경험을 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이를 보고 ‘회사에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직원도 있다.
나는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내 사수는 프린트한 서류에 스테이플러를 깔끔하게 찍는 법을 가르쳐주며 생색을 냈다. 대기업에서는 프린터나 스테이플러 사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사수가 있다. 그 기업이 수십년간 성공해온 방식이 있어 굳이 새로운 방법을 찾기보다는 선배들이 해왔던 방법을 전수하기에도 바쁘다. 자연스레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상황을 만나는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과거와 달리 대기업에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위로를 한다. 실제로 우리 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직하기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젊은 세대에게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한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벤처를 창업하고 그다음 똑똑한 친구들은 페이스북이나 넷플릭스 같은 새로 떠오르는 회사에 취직하고 가장 뒤처지는 친구들이 대기업을 간다고 한다.
우리 청년들도 벤처 기업에 취업했으면 한다. 유망한 벤처 기업, 그러면서 아직 초기여서 주가가 충분히 뛰지 않은 곳, 아직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회사에서 경영진과 함께 맨땅에 헤딩하는 고민을 하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보라. 훗날 위대한 창업자가 돼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